[부모님과 함께 마을에 서다] 땀 빼고 놀기 좋은 날!
[부모님과 함께 마을에 서다] 땀 빼고 놀기 좋은 날!
  • 진영란
  • 승인 2018.08.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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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평화샘 공부하는 건 다들 아시지요? 단순히 평화로운 교실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마을 사람이 되어, 마을을 공부하고, 마을로 공부하는 마을 교육과정 실현을 꿈꿉니다. 장승에 온지 세 해째 되어가는 요즘, 그 꿈을 위한 한 걸음을 드디어 떼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랑 함께 생활하면 정말 끝내주게 놀 줄 아는데, 왕년에 한 고무줄씩 하셨을 법한 부모님들께서 좀처럼 놀이감각을 깨우지 않으시고, 삼삼오오 모이셔서 이야기꽃을 활짝 피우시니, 부모님들과 한판 신나게 놀아보고 싶은 제 욕심을 제대로 채울 수가 없었답니다. 헤헤^^ 그래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았던 것을 혹시 아셨을랑가 모르겠어요. 학년모임 때마다 나와서 아이들하고 놀았었는데. 눈치 못 채셨죠?
 

 부모님들을 위한 놀이마당을 따로 열어야했는데 제 게으름 때문이었겠지요. 그래서 마음을 좀 굳게 먹어보기로 했어요. 며칠 상담을 계속 하다보니까, 우리 아이들 너무 예쁘게 잘 자라주고 있고, 한글도 쑥쑥 늘고, 수학도 잘 따라와주고, 무엇보다 서로 아끼고 배움을 끌어주는 모습이 대견해서 매번 자랑만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부모님들을 위한 시간으로 써 보자 마음먹었어요.

 주말에 배움길 공부에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요. 부모님들께서 마을 배움길의 인도자가되어 주시려면 부모님들과 함께 마을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좀 다급하게 톡방을 열었는데 월요일에 상담이 예정되어 있으셨던 부모님들께서 흔쾌히 함께 해 주시기로 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눈물 날 뻔 했습니다.

 예원, 의윤, 재영, 민준, 하율, 서윤 부모님께서 상담 전에 함께 놀고 나들이 하기로 마음을 모아주셨고, 상담을 이미 마친 겨레네도 함께 했습니다. 6시에 강당에서 모여서 부모님들의 놀이 경험을 나누는 일로 시작했습니다. 제 예상대로 우리 반 부모님들께서는 정말 끝내주게 노셨던 분들이더라고요. 고무줄, 공기, 팔방, 비석치기, 나이먹기...우리 아이들이 하는 놀이보다 훨씬 더 많은 놀이자원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부모님들께서 큰 소리로 놀이대장이 되셨습니다. “비석치기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큰 공, 작은 공, 훌라후프를 돌리며 놀던 아이들이 정신없이 달려옵니다. 편은 초등학생 대 어른, 미취학 어린이로 정해졌습니다. 왕년에는 한가닥씩 하셨어도, 놀기대장 우리반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한참 응원전을 펼치다가 ‘대한민국’을 ‘어린이국’으로 바꾸어서 박자를 탑니다. “어린이국! 어린이국!” 응원전도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결국 비석치기는 어린이국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다음으로는 오재미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몸이 날쌔고 작아서 아아들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엔 왼손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점잖게 던지시던 어른들이 직선 속구를 던지십니다. 놀이할 때 열정은 누르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아이들을 물리치고 어른들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적당히 봐주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어른들의 전의가 아이들의 의욕을 꺾고 말았습니다. 뒤 늦게 눈치 채신 어른들이 일부러 죽어 주는 것으로 놀이마당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살랑살랑 여름밤의 동네나들이입니다. 뜨거운 열기를 벗어나서인지 바깥은 나들이하기 딱 좋을 만큼 선선합니다. 나들이 코스는 우정마을입니다. 겨레네가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겨레네 동네니까요.

 우선 텃밭에 들러서 익어가는 참외랑 오이랑 토마토를 구경했습니다. 앙증맞은 수박을 보고는 모두 탄성을 자아냅니다. 옥수수랑 키도 대보고요. “선생님! 옥수수네 어머니가 훨씬 커요!” 하율이가 외칩니다. 우리가 즐겨부르던 노랫말이 떠올랐나봅니다. 오이를 따서 옷에 슥슥 문질러 맛을 봅니다. 상큼한 오이향이 입안에 가득 찹니다. 아까키 이파리로 아이스크림 내기 가위바위보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재영이 어머니의 가위바위보 실력을 당해낼 수가 없군요. 제가 지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저축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난 아이들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이총매미가 운다. 소리도 곱게~” 마을길에 접어 들었습니다. 대추나무 꽃 아래서 새끼손톱만큼 자란 대추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정말 단단하게 생겼네요. 대추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우리가 나들이할 때마다 머물렀던 정자에서 시원한 수박이랑 얼음젤리 간식을 먹었습니다.

 “어디서 보던 양반이네!”고구마순을 벗기시던 할머니가 인사를 하십니다.

 “우리 옆집 땅 산 양반이구만.” 저랑 이웃이 되실 할머니께서 답을 해 주십니다.

 “집은 언제 지을거여? 세 채 짓는다면서? 빨리 잘 지어서 나도 한 채 주고 그려.” 쑥스러워서 저도 고구마순을 함께 벗기며 뭉기적댔습니다. “가을부터 공사하려고요.” 정말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살랑거리는 저녁 바람을 쐬다가 학교로 돌아오려고 하니까 “왜? 벌써 갈라고? 우리가 빨리 하고 비켜줄라고 했드만.” “아니에요. 저희 상담하려고요. 들어가봐야 돼요.”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아직 이사도 오지 않은 저를 마을 사람으로 여겨주시는 것도, 우리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시는 따뜻한 배려도요.
 

 교실에 오는 길에 텃밭에서 오이랑 가지를 땄습니다. 정성껏 농사지은 보람이 있네요. 오이를 하나씩 받아든 가족의 표정이 정말 환합니다. 돌아와서는 우리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 그리고 쓰고 생각한 것들을 모아 놓은 노트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대로만 커 준다면 이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기대가 돼요.”“이 자연의 혜택을 정말 맘껏, 원 없이 누리는 것 같아서 행복해요.”

 정말 그래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기대되고, 궁금하고, 설렙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을 만난 건 정말 커다란 축복이고 행운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순수하고, 따뜻하지만, 주도적인 배움의 모습이 부모님들 얼굴에 그대로 보입니다. 좋은 부모님이 되어주셔서, 저를 믿고 따뜻하게 바라봐 주셔서, 더운 여름날에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 놀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떠셨어요? 한 여름 밤의 나들이.

진영란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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