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배움으로 삼는 ‘마을교육공동체’
삶을 배움으로 삼는 ‘마을교육공동체’
  • 김희수
  • 승인 2018.08.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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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억에 담긴 고향의 시골마을은 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매미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 냇갈 물소리, 웃음소리 등 그 소리엔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돌이켜 보면, 그 신나는 놀이 소리 속에는 ‘합의’와 ‘질서’가 있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승복이 있었다. 승패에 취해 싸움질을 했을지라도 승자의 배려와 아량이 있었다. 한 편이 상대 편보다 지나치게 힘이 세면, 전체의 ‘판’을 흔들어 댔지만, 자연스럽게 무게 중심을 맞춰 평온을 찾았다. 우리는 어릴 적 놀이를 통해 사회화의 과정을 익혔다. 놀이터는 우리를 성장시킨 바로 학교였다. 교사가 없지만 우리만의 사회를 만들었다.

 김승환 교육감 3기 교육청 4년의 정책윤곽이 발표되었다. 그 비전들 속에서 반가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바로 ‘마을교육 공동체를 활성화’ 약속은 내 추억과 같은 느낌이다. 이는 학교가 배움의 공간을 마을로 확장하겠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배움에 학교와 마을이 손잡고 나서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소중한 아이들의 배움을 위해 교육청과 전라북도가 함께 마당을 열겠다는 것이 반가웠다. 이쯤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봤다. 공교육의 오랜 관행과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았다. 그러면서 느린 변화들, 경쟁을 통한 성적 평가, 획일화된 교육방식들, 시험 결과를 통한 사람의 평가, 그 속에서 얻어지는 행복, 이런 것들이 학교 울타리 속에 가둬져 우리를 집단무의식의 상태로 만들어 버렸던 것은 아닌가. 

 필자는 교육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선택했다. 그것은 교육이 삶의 현장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교단에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으로 보여 주는 부모의 역할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교육의 본질은 ‘기술적’이나 ‘전략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현장에서 세상을 걱정하고, 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것이 더 교육적이다. 최근 교육현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늘어 간다. 본질을 잃어버린 것처럼 안타깝다. 교육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마을을 교육의 현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본래의 자리로 교육을 되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시골마을엔 아이들의 소리가 끊겼다. 커다란 둥구나무 밑에는 매미소리만 요란하고, 물가에는 웃자란 풀숲만 어른들의 시름만큼 가득하다. 학교에는 아이들이 없어서 배움이 멈추기 직전이며, 그나마 한 둘 있는 아이들도 함께 뛰어 놀 아이들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읍내 학교까지 다녀야 할 형편이다. 마을이 무너지면, 학교도 무너지고, 학교가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질 수 있다. 교육과 정치를 다른 영역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다.  

 교육은 항상 본질로 되돌려야 한다. 사는 곳이 일터이고, 놀이가 배움이고, 관계가 세상인 사회가 돼야 한다. 어른들의 사는 모습이 예측 가능한 나의 미래이고, 함께 뛰노는 아이들이 평생 함께 할 이웃이 되는 사람사는 사회이다. 또래 아이들을 통해서 관계를 학습하고, 이웃들을 통해서 나눔을 실현하며 분배의 정의를 학습해가는 세상의 학교, 마을을 이제 교육의 장으로 살려야한다.  

 어른들의 손을 잡고 함께 뛰었던 운동회의 기억이 돋아난다. 그 기억 속으로 되돌아 가 우리의 교육이 미래를 만들었으면 한다.

 

 김희수/ 도의원(전라북도의회 교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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