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어냄으로 거듭나기, 물 축제
씻어냄으로 거듭나기, 물 축제
  • 최정철
  • 승인 2018.07.3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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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송크란 물축제
 연일 폭염 기승인 한여름이다 보니 사람들은 너나없이 시원함을 목매어 찾는다. 휴가철도 되었겠다, 계곡이 강이 바다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물은 분명 사람들에게 여름철의 휴식과 즐거움을 주는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 공기, 흙, 물을 지구 형성의 기본 원소로 적시했다. 이것을 4원소라 한다. 4원소는 인류 정신문화와 문명 발전에도 철학적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불은 엄격함과 부드러움의 의미를, 공기는 지혜와 상생의 의미를, 흙은 강인함과 의지와 풍요의 의미를, 물은 우연과 해탈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우연과 해탈을 말하는 물. 그러나 그것은 고차원적인 해석이고 이 물을 현실적으로 풀어볼 때 일단 생명부지에의 필수 요소임을 들 수 있고 씻어주는 기능이 그 다음을 이을 것이다. 씻어줌. 곧 정화(淨化)다. 먼 옛날, 이 씻어줌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그리스도교였다. 그들은 이 씻어줌의 상징을 가지고 끝내 종교 의식으로까지 승화시켜 사람들의 심성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요단강의 요한이 사람들 머리를 씻어줌으로써 그들의 재생을 선구하고 있을 때 예수까지도 이 세례에 동참하고 있다. 요즘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는 그저 머리에 물을 뿌리거나 적셔주는 정도로만 시행하지만 옛날의 세례는 머리를 물에 푹 담그는 방식으로 개진했다. 세례를 뜻하는 밥티즘(Baptism)은 원래 그리스 말로 ‘침수(浸水)하다’의 ‘밥티스타’에서 나왔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와 반면 이슬람교는 그 끔찍한 할례(割禮)로, 불교는 수계와 법명을 받는 것으로 세례에 갈음하고 있다.

 동양의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서양인들이 이 세례에 종교적 상징을 부여했다면 동양 사람들은 그저 물로 씻어냄으로써 ‘중생(重生, 거듭남)’한다는 풍속적 의미로 널리 공유해 왔다. 그런 흔적은 세시로 유지 전승되고 있으니 중국 운남성의 발수절(發水節), 태국의 송크란(Songkran) 축제, 미얀마의 띤잔(Thin Gyan) 축제, 라오스의 피마이(Pi Mai) 축제들이 대표적 예다.

 이중에서 해마다 4월 중순 경 시행되는 태국 송크란 축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송크란은 ‘태양이 움직이는 새로운 날’이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로 곧 한 해의 시작을 뜻한다. 따라서 4월은 태국인들에게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이 된다. 새해 들어 축제일이 되면 먼저 집안의 부처상을 물로 씻으며 발복 기원하고 부모에게 세례하면서 고마움을 표한다. 그런 후 가족 간에도 세례를 해준다. 집안에서의 세례가 끝나면 사원으로 달려가 부처상 세례를 행한다. 이어서 어른들은 승려에게, 일반 주민들은 어른들에게 세례를 행함으로써 종교적으로 공동체적으로 합일을 기린다. 이 정도로 의식적 과정을 마치면 이제 사람들은 물을 들고 앞뒤 다투어 거리로 뛰쳐나간다. 그리고는 너나 가릴 것 없이 덮어놓고 서로 물을 끼얹어주며 한데 뒤엉켜 즐기며 논다. 송크란 축제는 한 해의 시작과 함께 감사와 조상 숭배, 가족 간 사랑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바,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바로 생명의 근원이자 풍요를 일구어내고 액운을 씻어주는 물이다. 언급한 다른 축제들도 대개 물을 흠뻑 뒤집어쓰는 식으로 즐기는 형태를 취한다. 이런 식으로 동양의 대표적 물 관련 풍속들 역시 물에 흠뻑 적심으로써 정화의 의미를 풀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네에게는 이들과 같은 물 풍속이 없었을까? 우리네 조상님들은 아무렴은 점잖았는지 경망스럽게(?) 대놓고 물을 끼얹어주는 것 대신 깊고 은근한 취향을 앞세웠던 듯하다. 단오 날의 창포놀이가 여인네들의 머리 감기라 하면 남정네들은 유두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찾아가 머리를 씻었다(동류두목욕 東流頭沐浴). 조선의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은 고구려 신라의 사람들이 음식을 가지고 동쪽으로 흐르는 냇가를 찾아가 머리감고 목욕하면서 불길한 액들을 쫓아내었다는 것을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로 전하고 있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찾았다 하는 것은 해가 뜨는 동쪽의 양기를 얻고자 함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민족은 정화와 함께 액운을 몰아내는 것으로 세례와의 연을 맺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근래 들어 이 땅에도 모양새 갖춘 물 축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남 장흥의 물 축제, 전북 무주의 남대천 물 축제, 서울 도심 신촌의 물총 축제, 경기 양평 물 축제 등이 현대 한국인의 물 풍속놀이로 자리 잡고 있다. 물놀이는 그저 신나게 놀면 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앙금이나 원망, 스트레스, 슬픔, 분노 등을 씻어내어 거듭나자는 의미의 의식으로도 여기길 바란다. 물놀이 중에 물귀신과 만나는 일은 없도록들 하시고.

 /=최정철 서울시 한양도성문화제 총감독(『성공을 Design하는 축제실전전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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