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외길 인생, 이형석 보천당 표구사 대표
반세기 외길 인생, 이형석 보천당 표구사 대표
  • 김영호 기자
  • 승인 2018.07.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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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딱! 뚝딱!”

 30일 오전, 여름 한 낮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는 전주 완산경찰서 주변으로 군데 군데 자리를 잡은 표구사들이 눈에 띄었다.

 유난히 망치 소리가 크게 들린 곳을 찾아서 무작정 쫓아가다 보니 보천당 화랑·표구사의 이형석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올해로 71세인 그가 운영하는 이곳은 알고 보니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표구사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전주 최고의 표구 기술자란 자부심으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내 일을 사랑하다 보니 정작 다른 일은 생각도 못했지만 결코 후회는 없어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지난 55년 동안 이 대표는 전주 표구 역사의 산증인으로 외길 인생만을 고집했다.

 사실 표구는 일반인이면 생소하게 여기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도 문화 예술계에 종사하는 작가들은 표구를 한 번 쯤 했을 정도로 익숙한 분야이다.

 예로부터 배첩이라 불린 표구는 그림이나 서예 작품에 종이 또는 비단을 발라서 나무 등의 장식품으로 족자나 액자, 병풍 등을 꾸미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열여섯의 나이에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는 이 대표.

 그는 표구 입문 당시 전주 중앙표구사에서 근무하며 조중태 화백과 경남 마산에서 현임당 표구사를 운영하던 박장화 화백으로부터 그림에 대한 기본 상식부터 배웠다.

 이를 통해 그림이나 글씨 등을 덧붙이는 배접의 유의사항과 그림의 감상법 등을 깨달았다.

 또한 부산 보천당 표구사에 근무하면서 김만희 선생에게 밀가루를 침전시킨 후, 백반과 황납을 넣어 풀을 쑤는 방법 등을 차례로 익혔다.

 이 대표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표구를 배웠고 평생 직장이란 사명감으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이 대표가 전혀 꿈이 없던 것도 아니다.

 어렸을 적에는 사촌 형제인 춘포 이형수 화백의 영향을 받아 동양화에 심취해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털어 놓았다.

 이제는 55년에 달하는 표구 경력을 거울 삼아 연구하고 노력해 시행착오를 겪어 체득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표구는 그의 인생에서 나침반이 됐고, 3명의 자녀를 대학에도 진학시키고 해외 유학을 보낸 삶의 터전이 됐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표구사가 전주지역에만 70곳에서 80곳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누렸어요. 하지만 요즘엔 표구나 병풍 제작을 맡기는 추세가 이전과 같지 않고, 오히려 덜하다 보니 10곳 정도가 남아 근근하게 버티는 중입니다.”

 이 대표는 오늘도 장인 정신으로 대나무 잣대와 망치를 벗 삼아 더운 날씨에도 표구사 문을 닫지 않고 손님을 맞이한다.

 “서울에서부터 마산까지 전국 각지에서 방문하는 단골들이 있는데 그들을 생각하면 쉴 수가 없죠. 저에게 정년은 따로 없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저 내일은 어떤 작품을 표구할까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표구사를 지키고 있죠.”

 이 대표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 한시도 손을 놓는 법이 없었다.

 “뚝딱! 뚝딱!” 하루 종일 망치질 소리가 그칠 질 모르는 이유도 표구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사라지는 요즘, 세상을 향해 강한 존재감을 알리려는 것처럼 그의 망치질 소리는 오늘도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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