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는 정치와 좋은 정책
잘 하는 정치와 좋은 정책
  • 채수찬
  • 승인 2018.07.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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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대 국회 의정활동을 같이했던 노회찬 의원이 영면하였다.「촌철살인」의 유머감각을 지녔던 그가 왜 자신을 내려놓는 유머는 발휘하지 못했는지 아쉽다. 그의 명복을 빈다. 영결식장에서 여러 정당의 정치인들과 마주치면서 현 정국에 대한 갖가지 상념이 머리를 스쳤다.

 한달 전만해도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여당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그 동안 추진해온 정책들에 대한 실망감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왠지 2012년이 생각난다. 2012년4월에 총선이 있었고 12월에 대선이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도는 바닥이었고,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압도적 승리가 점쳐지던 때였다. 당시 필자는 2012년 대선에서민주통합당이 패배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 이유는 당권을 잡고 있던 친노 지도부가 안보와 경제를 챙기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해군기지, 한미 FTA 등의 이슈를 이념 대결로만몰고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의 승리가 무난하리라고 봤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민주통합당이 패배하였다. 대선에서의 패배는 당연한 결과였다.

 민주통합당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 된 지금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 정책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 대안은 마뜩지 않다.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지역정치와 낡은 이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를 표방했던 국민의당의 후신인 바른정당과 민주평화당도 리더십의 결여로 분열하며 표류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맥을 이은 정의당도 낡은 이념적 틀에 매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안 세력에 대한 정치적 수요는 있으나 공급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정책을 집행해야 될 공무원들이 정권 말기에는 복지부동하는 게 보통인데, 요새는 정권 전반기임에도 복지부동하고 있다.공무원들 입장에서 보면, 정책방향과 정책수단들이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워 손놓고 있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원하는 정책을 집행하려면 위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를테면 누가 돌을 하늘로 던지면서 「하늘로 돌이 올라가게 하겠다」고 한다면,그가 뭐라고 말하든 실제는「돌이 땅에 떨어지게」하는데 목표가 있다고 이해하는 게 맞다.

 현 정부의 정책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하면 혼란스러움이 덜 할지 모른다.필자는 「촌철살인」의 언어구사는 못하지만 풍자적 표현으로 독자들이 폭염을 극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다음은 극비로 분류되어 있지만 현정부의 정책조합에서 유추할 수 있는정책 용어들의 정의이다.

 「적폐청산」이란 말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무능한 사람들로 채우자는 뜻이다.「재벌개혁」이란 재벌3세들의 거대 기업군에 대한 부당한 지배는 유지시켜주되 그들의 경영활동을 방해하여 투자를 줄이게 하자는 뜻이다.「일자리 정책」은나라 전체 일자리는 줄이되 누구나 한 번 붙잡은 일자리는 본인이 연로하게 되거나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떠나지 않게 하자는 정책이다.「부동산 정책」은 특정지역 부동산 가격을 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노라고 엄포를 쏘아 실제 가격은 올라가게 하는 마술이다.「소득주도 성장」이란 성장을 둔화시켜 소득을 줄이자는 뜻이다.「혁신경제」는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검증되지 않은 별난 아이디어들을 찾아내자는 뜻이다.

 정치는 결국 정책조합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잘못된 정책들이 나오면 정치를 잘못하는 것이요,좋은 정책들이 나오면 좋은 정치를 하는 것이다. 선거에 이기는 정치가 잘 하는 정치요, 좋은 정책에 대한 평가는 한가한 학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동안 한국 선거들을 보면 유권자들이 대체로 옳은 선택을 하였다.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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