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현실에서 미래를 설계하다
영화 같은 현실에서 미래를 설계하다
  • 이소애
  • 승인 2018.07.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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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손을 맞잡고 작은 콘크리트 턱인 군사분계선을 오간 두 사람. 봄바람을 포옹하며 도보다리에서 나누는 정담의 모습. 그리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이 담긴 판문점선언 등은 거짓이 아닌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비행기 폭격소리와 완장을 차고 동네를 다니며 마루 밑에 숨어 있던 아버지를 끌고 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눈에 선하다. 저녁이면 담요로 방문을 가리고 이불 속에서 벌벌 떨던 공포의 나날들은 생각만 하여도 부들부들 떨린다. 전쟁 후, 빈 총깍지를 몽당연필 끝에 끼우고 엎드려서 숙제를 하던 가난의 추억이 떠오른다.

 학교에 가면 <육이오 노래>를 풍금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 가사에 담긴 이 절규를 서로서로 손잡고 목청껏 부르곤 했었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관계가 급반전하기 시작했고 4월 27일 감격스러운 남북정상회담은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올 때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전율이 온몸을 감돌았다. 눈앞의 현실은 호흡이 빨라지는 흥분을 불러왔다. 통일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영국까지 여행할 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그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전주 옥류관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으면서 나도 평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보았다.

 선거 때만 되면 북한의 만행이 또 발생하겠구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민족의 봄이 왔다고 하니 70년 단절된 남북 혈맥이 강물 흐르듯 흐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해보았다.

 10여 년 전에 가본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다시 만끽하고 싶었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차창 밖에 보이는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면서 열차여행 할 날을 기다려 보겠다. 아니다. 북한에서 오를 백두산 야생화를 먼저 볼 일이다. 살아남기 위하여 키가 작은 야생화들을 껴안아 보리라. 그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뒷담화를 들어보리라. 그날을 위하여 건강을 살펴보고 또 걷기 연습도 해야겠다.

 나의 기억에서 오래 담아 놓기 위해 신문을 오렸다.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걸어오는 장면을 말이다. 볼수록 기적 같기도 하고 재밌는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현실이다, 현실이야, 현실이 거짓이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꼭 붙들어 맬 일이다.

 사실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요리할 때마다 꺼림직 한 생각이 항상 스쳤다. 꽃게 철이 되면 연평도 총성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명태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면 전투 비행기에서 쏘아대는 폭격에 몸살을 앓고 있을 산과 바다가 안쓰러웠다. 총성 소리와 탱크 바퀴 발자국, 군인들의 함성이 귀에 쟁쟁해서 폭탄냄새가 나는 듯했다.

 너무 민감한 탓이겠지 생각하면서도 전쟁이 없는 평화스런 나라가 되기를 기원했다.

 생각만 하여도 영화 같은 현실이 재밌다. 도보다리 밀담을 새들은 엿들었을지도 모른다. 꿩~ 꿩~하고 꿩은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며 소문을 내고 다닐 것이다.

 빠른 속도로 짹짹거리던 방울새는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며 청딱따구리와 주고받을 것이다. ‘끼끼끼끼~’ 독특한 소리를 내며 응답하는 청딱따구리는 소리로 존재를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며 판문점의 평화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는 게 아닌가. 크고 맑은 소리가 청아하고 예쁜 되지빠귀 여름철새는 판문점을 떠날 채비를 할 것이다. 도보다리는 새들의 영역이라고 으스대는 산솔새가 보고 싶어진다. 이들이 증인이다. 증언을 해 줄 새들이 있어 든든하다. 영화 같은 현실에서 나도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소애<시인/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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