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화해”
“아름다운 화해”
  • 김양현
  • 승인 2018.07.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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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삼 강조하지만, 노동심판사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판정도 화해만은 못하다. 그만큼 노동분쟁해결에 있어서는 화해가 우선한다. 그것이 어떤 경위로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지든 간에 불문하고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정의를 감춘 화해는 화해라는 미명을 빌린 불의의 정당화일 뿐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해는 애당초 누가 옳고 그름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정의를 논할 수 없을뿐더러 또 분쟁의 종국적 해결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화해만한 것은 없다. 다만, 필자가 보기에 아무리 화해가 판정보다 좋다지만 모든 화해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그중에 아주 드물게 정말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화해가 있어 소개한다.

  얼마 전 조그마한 경비용역회사에서 일하는 경비원 한 분이 해고를 당했다고 우리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였다. 알고 보니 용역회사 관리자와 사소한 말다툼에서 비롯되었다. 심문회의 이전 당사자 간 화해조건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사실관계도 명료하니 깊은 심문이 필요하지 않아 바로 화해조정을 시도하였다. 막상 조정에 들어가니 근로자는 2개월분의 임금을 요구하였고 사용자는 1개월 임금을 해고예고 수당으로 가름하겠다고 하는데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하도 답답하여 위원들은 나가고 둘만 남겨두고 이야기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길 한참 후에 뒤 돌아와 와보니, 사용자 측 대리인이 신청인 요구조건을 그대로 수용하겠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용자 측 대리인(회사의 관리자)이 자신의 월급으로 1개월분을 보태기로 하였다. 가슴이 찡해왔다. 회사에서는 규정과 원칙만 운운하면서 2개월분은 안 된다고 하니 자기가 알아서 그렇게 마무리한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당사자들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깨를 토닥인다. 정말 베풀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없는 사람들끼리 동병상련이 저런 것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어 코가 시큰해졌다.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은 여기까지 올 것도 아니었다. 예의 그렇듯이 이 사건의 본질도 의사소통문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아주 사소한 감정적 대화가 이렇게 된 것이다. 대게 맞교대 근무하는 현장에서 이런 일이 왕왕 발생하는데, 이 사건 근로자도 비번 다음날 갑자기 못 나오겠다고 하니까, 관리자 입장에서, 특히 대체인력을 투입할 여력이 없고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있어, 다분히 감정이 실린 말투가 튀어나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 좋은 말들이 오갈 리 없을 것이고 결국은 이 같은 사달이 난다. 이 모두가 그 놈의 홧김에 내지른 말과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것으로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것이 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아니던가? 그러나 대부분 순간 확 끓어올랐다가도 어디쯤에서 멈추어 적당히 감정을 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인데, 평소 심사가 꼬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 사례를 보면, 일단 해고 사건이 우리 위원회로 접수되어 피신청인에게 통보되면 그제야 사용자는 이리저리 알아보고 난 후 뭔가 잘못되었다 싶으면 근로자에게 바로 연락하여 당장 출근하라고 한다. 그런데 일부 고약한 근로자는 사용자가 출근하라고 하여도 연락도 받지 않고 만나 주지도 않는다. 이렇게 되면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 화해도 어렵거니와 화해 조정 중에도 서로 서운했던 점만 늘어놓는다. 일부 당사자는 노무사나 지인으로부터 “결코 쉽게 화해하지 마라”라는 얘기도 들었을 터이다.

  이런 경우라면, 비록 나중에 화해를 하더라도 진정한 화해도 아닐뿐더러 당사자들이 내세우던 명분도 퇴색하고 만다. 피신청인은 돈 주었으면 이제 그만이지 하고 말 뿐, 신청인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신청인도 당초 주장한바 같이 상대방 사과나 명예회복은 어느덧 던져버리고, 오직 돈 이야기만 한다. 물론 화해의 대부분은 적정한 금전적 보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돈은 화해성립의 중요한 관건이다. 그러나 돈이 상처 입은 마음이나 자존심까지 달래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화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진심어린,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화해는 정말 드문 것 같다.

  김양현 전북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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