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은 죄가 없다
상고법원은 죄가 없다
  • 유길종
  • 승인 2018.07.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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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뚱맞은 말이지만 상고법원은 죄가 없다. 작금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의 와중에서 상고법원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시발점인 것처럼 매도되고 있지만, 상고법원은 그런 비난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1, 2심에 대한 불복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특히 대법원 상고사건은 도를 넘게 폭주하고 있다. 대법관 한 명이 담당하는 사건 수가 연간 3,000건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대법관이라도 1년에 3,000건을 제대로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처럼 능력이 아닌 성향을 기준으로 대법관이 임명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재판연구관들의 검토의견이 그대로 대법원판결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소문이 났다. 대법원 재판이 졸속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식과 불만은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고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2013년경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상고심 기능강화 방안’으로 상고법원 제도의 도입을 건의했고, 이후 대법원은 상고법원의 법제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 내용은 우선 대법원이 모든 상고사건에 대해 사전심사를 해서 ‘법령해석 통일’이나 ‘공적 이익’과 관련된 사건들은 대법원에서 재판하고, 개인 간의 권리구제에 관한 사건들은 새로 설치하는 상고법원에서 담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에는 국회의원 168명이 상고법원 설치안을 발의하였다.

 상고법원 설치안 발의를 전후하여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고법원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59%가 상고법원 도입에 찬성하였고, 각 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부산, 울산, 경남을 제외한 나머지 변호사회의 경우 찬성률이 대부분 60%를 넘었다. 필자가 속한 전라북도변호사회의 경우에도 상고법원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이 66%였다. 부산, 울산, 경남의 경우는 상고법원 지부가 설치된다면 찬성할 수 있으나 그게 보장되지 않아서 반대한다는 의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법관들도 대법관 증원안보다는 상고법원 도입안에 훨씬 더 많은 찬성의견을 낸 것으로 안다.

 필자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상고법원 설치안을 지지하였다. 대법원이 추진하는 상고법원 도입이 좌초된다면 앞으로 대책도 없이 최소한 5년에서 10년 동안은 졸속의 수긍할 수 없는 대법원 판결을 계속 받아야 하는데, 이는 참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과, 대법원이 사건의 홍수 속에서 대부분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지 못하고 덮는 것보다는 상고법원에서 권리구제형의 사건을 충실히 심리하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무리수를 둔 것이다. 정권의 호감을 사기 위한 부적절한 행동들과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 사람들에 대한 유치한 대응이 속출했다. 재판이나 열심히 할 판사들을 어쭙잖게 동원한 결과가 작금의 사법농단 사태로 귀결된 것이다.

 필자는 상고법원은 대법원에 대한 여러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었다고 믿는다. 상고법원 추진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여 상고법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반대만 한 것이 문제였다. 상고법원이 좌초된 이후 상고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없이 세월만 허송하고 있고, 그 덕으로 지금도 졸속 대법원 재판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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