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반란의 추억
군사 반란의 추억
  • 최정호
  • 승인 2018.07.2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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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무사 계엄 준비 문건이 연일 신문 방송에 보도된다. 반란의 추억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대수롭지 않은 일탈일까?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하며 루비콘강을 건너던 카이사르의 군사반란은 성공했다. 물론 그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라며 원로원에 시적 승전보를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화정을 배신했다는 혐의로 살해당했다.

 제국의 지배권은 군사 반란에 의해 교체되어왔다. 군사반란은 문명세계에서 문제해결의 최종선택이었다. 그러나 문자가 발명되고 학문이 발생하자 안정된 체제 수호를 위하여 반란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발생하였다.

 혁명(革命)은 주나라 무왕의 반란에 정당성을 확보해준 주역에서 ‘탕무혁명순호천이응호인(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 즉 천명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처음 쓰였다. 서구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특히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왕위 획득의 정치적 수사로 시작되었고, 서구에서는 왕정 타파의 대의를 언명한다. 한나 아렌트는 “혁명의 목적은 자유의 확립이고, 반란의 목적은 해방이다.” 이라며 둘 사이의 언어적 용도를 설명했지만, 언어는 승자의 이익을 대변하여, 성공한 반란은 곧잘 <혁명>의 외피를 입는다. 쉽지는 않았겠지만 지난 2016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계엄령 계획 세력들은 그들의 뜻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겐 행복한 반란의 추억이 있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헌법을 중지시킬 명분을 만들면 단 한 번의 거친 도박으로 대박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대담한 계획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하늘이 준 기회였다. 박정희, 전두환 일파들은 단 한 번의 배신으로 자신과 충복들의 가족까지 대대손손 입신양명하고 호의호식하지 않았는가? 반란의 아이콘, 기무사가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린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당시 어느 일간지에는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계엄>을 선포하라고 했는데 <개헌>으로 잘 못 알아들었다는 추측성 만평을 실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가지는 군사반란의 추억은 공포이다. 우리들은 자유와 평등, 정의가 실현되길 바라지만 516과 1212 반란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행복의 추구는 오로지 그들 반역자들의 몫으로 돌아간 공포의 추억을 간직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일반의지>가 가지는 반란의 생채기에 모래를 뿌리는 듯한 공포의 트라우마가 확산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는 역사에서 오는 기시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총을 가진 군인들의 반란은 왜 그렇게 용서 불가능한 대죄로 물어야 할까? 모든 개인은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보장된 것 아닌가? 모든 위대한 전진은 기종 질서에 대한반란이 아닐까? 군사행동을 엄금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헌정을 중단하고 계엄으로 모든 권력을 빼앗을 기획한 적극적 자유가 어떤 근거로 징죄되어야 하는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 체제를 제1조 1항으로 그리고 제2항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기한 헌법을 가진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시도이다. 사법, 입법, 행정부를 비롯한 모든 헌법 기관의 모든 행위마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한시적 권한만을 가질 뿐이다. 5·16과 12·12 반란 세력과 그 우두머리에 굴복한 과거가 이번 기무사 계엄 기획의 일등 공신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은 것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준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젊은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독재자가 되기 위해 육사를 가겠다는 희망을 갖게 할 것인가? 군사 반란의 성공신화는 공화국의 앞날을 어둡게 만든다. 군사적 반란은 대표적으로 관용의 이름으로 불관용을 관용하지 않을 범죄이다.

 군인들의 반란이라는 적극적 자유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칼 포퍼의 자유의 역설을 인용한다. “자유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 때, 자유는 자멸한다. 아무 제약이 없는 자유는 강자가 약자를 협박하여 그의 자유를 강탈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의 자유가 법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하기 위한 범위 안에서 국가가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누구도 타인의 자비심에 내맡겨져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

 최정호<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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