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폭력, 이제는 멈춰야 한다
응급실 폭력, 이제는 멈춰야 한다
  • 김형준
  • 승인 2018.07.22 1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익산 모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진료 중이던 의사를 폭행하여 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힌 일이 있었다. CCTV에 녹화된 당시 사건의 생생한 영상이 언론과 SNS에 통해 퍼지면서 근본적인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의료계를 중심으로 청와대와 정부당국에 응급실이나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방해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이런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도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응급실이나 진료 현장에서의 폭력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그동안 의료 현장뿐만 아니라 119구급대원이나 경찰업무 등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직결되는 공공서비스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얼마 전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조현병 환자인 피의자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있었고, 지난 5월에도 취객을 구조하던 119구급대원이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피의자에 의해 구타를 당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응급실 근무 의료인이나 구급대원, 경찰 등은 이런 범행을 당하지 않더라도 평소에도 처참한 사고현장과 시신 등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상당한 업무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 일부 통계를 보면 응급실 근무자의 20%, 119구급대원 32% 정도가 크고 작은 ‘스트레스성 정신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하물며 자신의 일터에서 이런 폭행이나 범행에 노출될 때 받는 ‘정신적 트라우마’는 더욱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고통이 발생해도 의료인, 구급대원, 경찰 등은 또다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트라우마에 반복적이고 만성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어서 이것이 과중한 업무스트레스가 되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이 발병할 수 있다. 한편 공공서비스 현장에서의 폭력문제는 단순히 가해자-피해자의 문제를 떠나 응급의료, 치안, 구조구급 등 공공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은 다른 무고한 2차, 3차의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이번 병원 응급실 폭행사건도 마찬가지로 응급실 의료인을 폭행하면 당장 응급처치를 받아야 하는 다른 환자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술에 취한 환자가 자신을 응급실로 이송하던 구급대원을 구급차 안에서 폭행하여 자신의 안전뿐만 아니라 자칫 교통사고 등으로 이어져 무고한 이차 삼차의 피해자를 만들 수도 있는 아찔한 일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폭력은 단순히 당사자 간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사람과 이를 방해하는 사람간의 문제로 보고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문제이다.

 왜 그렇다면 이런 공공서비스에 대한 폭력 사건들이 최근에 늘어나는 것일까? 가장 크게는 폭력이나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의 개인적 성향이나 인격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최근 들어 이런 사건이 빈번해지는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보다 시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사회가 제공하는 의료, 안전 같은 공공서비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런 서비스가 무조건적인 제공을 해야 한다는 그릇된 권리의식이 일부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필자 역시 환자를 진료하면서 ‘내가 내는 보험료, 세금으로 먹고사는 것들이 왜 내 말을 안 들어’ 이런 식의 주장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안타깝지만, 공공서비스는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소중히 존중하고 지켜나갈 의무도 동시에 있다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이런 폭력사건에 대한 그동안 공권력이나 법의 태도가 너무 안일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응급실에 온 아픈 사람이 오죽하면 그렇겠는가? 혹은 서비스를 주고받는 계약 당사자 간의 문제로 인식하여 공권력이 가급적 개입을 꺼리거나 당사자의 합의를 부추기며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애매한 사법적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는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는 분노범죄의 한 유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같다. 재벌 집안의 갑질부터 묻지마식 범죄까지 최근들에 분노조절을 하지 못해 나타나는 다양한 분노범죄가 사회적 문제인데, 응급실이나 구조현장 등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 현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이 감정을 주체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분노조절장애’가 증가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랜 경제침체 이후 실업과 삼포시대 등과 같은 사회적 욕구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무기력, 분노, 갈등이 고조되는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도 한 원인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응급실이나 의료기관에서의 폭력뿐만 아니라, 경찰, 구급대원, 또는 운전 중인 운전기사 등 다른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과 장소에 대한 어떠한 폭력이나 난동도 강력히 처벌하는 불관용의 원칙으로 법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가해자를 벌주기 위함이 아니라 가해자 자신뿐만 아니라 이차, 삼차의 선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최소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 의료, 치안 같은 공공서비스의 혜택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지만, 그 권리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책임과 의무도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서로 소중히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형준<지석의료재단 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