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끝
인생의 끝
  • 김동수
  • 승인 2018.07.1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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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끝은 어디일까? 죽음일까? 아님 그 너머에 또 무슨 세계가 있는 것일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자탄한 버나드쇼의 묘비명처럼, ‘내 인생도 어느 날 그렇게 끝나고 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다. 우리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죽음’일 것이다. 한 번 돌아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기에 쇼펜하우어는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며 삶과 죽음의 관계를 불이적(不二的) 관계로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는 언제나 비범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슬픈 눈으로 하늘을

 쳐다봐도 알 수 있는 건

 언제나 無…

 우리가 살아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 또한 알 수 없는 것인가.

 아! 아! 존재 한다는 건

 다른 삶을 예고하는 현실인가

 뜻 없이 불어대는 새벽바람의

 흔들림인가.

 - 박순이, 「인생의 끝은 어디인가」에서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또 그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시작도 알 수 없고, 그 끝 또한 알 수 없으니 ‘하늘을/쳐다봐도 알 수 있는 건/언제나 無’ 아니면 또 ‘다른 삶의 예고’인가 하고, 박순이 시인도 언제 닥쳐올지 모를 죽음 앞에서 불안의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은 ‘인생의 끝은 죽음이기에 세상이 무너지는 시련이 닥쳐와도 마침표(.)만은 찍지 말고, 쉼표(,)를 찍어두어야 한다. 인생의 대상(大賞)은 가장 오래 견디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니 끝까지 버텨 사는 데까지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또 다른 곳으로의 이사’로 보면서, 삼라만상의 전 과정을 윤회(輪廻)로 설명하고 있다. 만상은 인연에 의해 이루어졌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며,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기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의 순리이고 자연의 이법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 결코 우리의 삶과 분리되어 있거나 그것으로 그냥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디론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모이고 쌓여 인과응보로 다시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해도 <님의 침묵>에서 ‘이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라 했고, 생시에 선덕을 쌓으면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고 악행을 많이 저지르면 고통을 받게 된다는 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도 다 인과응보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가지고 온다. 춘하추동의 순환도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다.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에 열매가 열리듯, 5월부터 음(陰)이 시작하여 10월에 사그라지고, 11월부터는 양(陽)이 다시 시작하여 9월에 사그라진다. 이처럼 하나가 다하면 그 자리에서 곧 다른 생이 시작되는 윤회를 거듭하며 생멸(生滅)하고 있다.

 티베트의 배리커진 스님(달라이라마의 주치의) 도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업에 따라 다시 돌아오기에 현세에 수행을 멈추지 말고 선행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진정 두려워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끝은 어디일까? 피할 수 없는 이 화두 앞에 그것이 죽음이든 영생이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것, 그리고 죽음은 결코 무(無)가 아니라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지 않은 생명은 없다. 그러기에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자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는 일이고, 산 자의 죽어가는 목소리를 보살피는 삶의 자세’일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져 가는 이 업보의 윤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죽어도 죽지 않은 삶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본다.

 김동수<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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