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일상침투:예술과 과학의 경계, 그리고 뫼비우스 띠
예술의 일상침투:예술과 과학의 경계, 그리고 뫼비우스 띠
  • 이태호
  • 승인 2018.07.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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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에서 예술과 과학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가끔 스스로 반문해보는 질문이다. 만약 컴퓨터 그래픽이나 프로그램, 홀로그램 등 다양한 첨단기술을 다루는 과학자가 예술적인 감흥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연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또 그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학적 지식을 갖춘 예술가가 제작한 예술작품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물론 현대미술에서는 과학자가 제작한 작품도 그 안에 예술적인 의도와 감흥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예술작품인가 혹은 좋은 예술작품이 아닌가’라고 하는 문제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신세계를 중시했던 예술은 자연세계에서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의 영역을 한낱 물질을 다루는 영역 정도로만 치부해버리고 될 수 있으면 예술의 영역에서 과학을 멀리하고자 애써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매체(Media)를 요구하는 현대미술에서 예술과 과학의 경계는 모호하기만 하다. 이미 많은 전시에서는 과학과 예술 사이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와 그 경계, 특히 현대미술에서 대두하고 있는 예술과 매체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물질현상을 다루는 과학과 정신적인 영역을 다루는 예술이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예술과 과학의 경계 허물기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틈새 엿보기 혹은 예술의 일상침투’와 다름 아니다.

 작품의 독창성(Originality)을 통해 순수 고급예술을 추구했던 모더니즘 예술은 삶이나 일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했기 때문에 예술은 일상적인 주제나 소재 등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현대미술은 다양한 미디어의 확장과 장르의 해체, 주제의 다양성 등으로 인하여 다원화 현상이 점차로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등 정보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탈이념시대라는 외적인 요인 이외에도 개성적인 세대의 탄생과 페미니즘, 비판적 역사주의, 키치, 새로운 미디어의 사용을 통한 다양한 창조 욕구, 전통적인 진리와 이론들에 대한 해체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대미술에서는 모더니즘 예술과는 달리 예술과 삶이 더 이상 단절되고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다다운동을 주도했던 마르셀 뒤샹은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巨匠)이다. 아울러 그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난해한 논쟁들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자 동시에 그에 대한 정확한 해법 역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뒤샹은 1917년 미국의 <앙데팡당전>에 그 유명한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의 남성용 변기를 전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 미술계는 전반적으로 아카데믹한 학풍으로 제도적인 틀에 맞추어 잘 그려진 그림들이 온갖 상을 휩쓸며 각광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뒤샹은 아주 세속적인 소재인 남성용 변기를 통해, 그것도 작가가 직접 제작한 변기도 아니고 공장에서 수천, 수만 개 대량생산된 복제품을 예술작품으로 출품하였다. 물론 그 당시 뒤샹의 이런 도발적인 행위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져 난타를 당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화풍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던 뒤샹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주목받기 위해서? 물론 아니다.

 이처럼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인 ‘변기’가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예술작품을 억압적 패러다임에서 해방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레디-메이드인 변기를 출품함으로써 그는 ‘창조’적 행위가 아닌 ‘선택’을 통해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작품을 제작하지 않았거나) 혹은 충분히 제작하지 않았다. 그는 ‘변기’를 제작하거나 창조하지 않고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의 근본적인 문제인 ‘창조와 비창조의 관계’, 즉 예술작품에서 제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뒤샹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작가의 손기술인지, 아니면 작품에 내재하여 있는 작가의 메시지나 철학적 사고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고 작품의 시각적 형식보다는 개념적 과정이라는 측면을 작품의 전면에 부각시켰던 것이다. 아울러 뒤샹의 레디메이드 변기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복제품을 선택함으로써 모더니즘 예술작품이 추구했던 예술작품의 독창성과 유일성, 원본성과 창작에 대한 문제제기뿐만이 아니라 모더니즘의 오랜 신화였던 ‘오리지널리티(독창성)’의 신화를 파괴하고 해체해버렸던 것이다.

 이태호<미술평론가/익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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