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요양원 건립으로 바로 세운 전북 자부심
보훈요양원 건립으로 바로 세운 전북 자부심
  • 정운천
  • 승인 2018.07.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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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축구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가슴에 빨간 양귀비 꽃 배지를 달고 경기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기리는 영국의 현충일인 11월 11일, Remembrance Day이다. 이날, 빨간 양귀비꽃은 정부와 왕실이 주관하는 추념식장이 아니라도 영국의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이야기를 더 해보자. 영국의 명문대학교인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에는 전쟁기념비가 서 있고, 마을의 중심가나 동네 어귀에서도 전쟁에 관한 기념물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대다수 전쟁기념비나 동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쟁에 참가해서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우리는 전쟁에 관한 기념물을 삶 주변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소위 ‘애국심’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기억이다. 영국은 현충일의 양귀비꽃이 하나의 문화로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고, 동네마다 과거의 희생을 마주할 계기를 마련해 두었으니 보훈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국가보훈처는 ‘보훈은 국가와 국민의 의무’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선열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공허할 뿐이다. 결국, 보훈 사업의 성과는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얼마나 더 오래, 자주,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하는지에 달려있다.

 6·25 참전 유공자, 월남전 참전 유공자 등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보훈대상자들은 현재 대부분이 고령이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잊혀질 수 있는 세대이다. 보훈요양원의 건립은 국가가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우리 세대에게 이들을 잊지 말라는 외침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의 노후를 국가가 끝까지 책임짐으로써 보훈가족의 자긍심을 제고하고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신뢰를 함양한다. 그래서 중요하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보훈요양원은 수원, 광주, 김해, 대구, 대전, 남양주 6개소가 건립되어 있고, 원주에 건립이 추진 중이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 지역별로 요양수요를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해도, 국가가 마땅히 부채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보훈대상자로 하여금 국가의 시혜를 마냥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전라북도 권역에 보훈요양원을 설치하라는 도민들의 요구는 정당하고 타당했다. 도내 보훈협력병원의 진료비 자부담률이 높고, 그나마 진료 과목도 몇 개 되지 않는 중소형 병원이라 도내의 보훈가족 약 4만여 명은 보훈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광주와 대전으로 이동하는 실정이다.

 지속적인 지역사회의 노력과 염원 탓일까? 2017년 12월, 드디어 우리 전라북도에도 기회가 왔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처럼, 여러 가지로 정치적인 상황이 매우 어려웠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위원을 맡게 된 것이다. 필자는 몇 년째 미뤄진 전라북도에 보훈요양원을 건립하는 특별예산을 세우게 되었고, 현재는 전주시 삼천동 인근에 후보지를 확정하는 등 2021년 개원을 목표로 보훈요양원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여기가 시작이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보훈가족을 위한 요양원이 있다’는 체험은 도민들이 국가의 보훈사업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 차원을 달리한다. 도내의 보훈가족의 자부심을 높이고, 국가의 보훈사업을 도민이 피부로 체험하고, 우리가 빚지고 있는 유공자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나라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보훈요양원 건립은 바로 그 시작이다.

 정운천<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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