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 시원한 나무그늘을 찾아 길을 걷다가 어느 집 담장에 늘어진 주황빛 선명한 능소화꽃을 만나니 저절로 발이 멈춰진다.
우리가 날마다 무심코 길을 걸어 다니고 차를 타고 지나가며 일을 보는 동안 주변의 꽃과 나무들 역시 열심히 본연의 일을 다하고 있기에 때가 되면 피어나 작년 그 자리에 가보면 다시 볼 수가 있어 참 반갑다. 요즘은 가을에만 주로 보이던 코스모스도 많이 보인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때가 되면 들어왔다가 한 학년씩 올라가 졸업을 하는 모습이 비슷하다. 대부분 같은 나이의 아이들 키가 고만고만하고 또래들끼리 생각도 비슷하기에 아이들을 만나면 대부분 이 아이가 몇 학년의 아이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다가 몇몇의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꽃이름 대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직도 이런 놀이를 하고 있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좀 지켜보니 “(짝짝!) 장미! (짝짝!) 백합! (짝짝!) 할미꽃!” 하며 재미있게 이어간다.
어린 학생의 입에서 ‘할미꽃’이라는 나오다니, 참 반가운 마음이 든다. 어느 해던가, 이른 봄에 햇살 따스한 무덤자리 앞에 피어있던 흰털이 보송보송한 할미꽃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던 생각이 난다. 할미꽃은 꽃잎이 떨어진 요즘에 보면 하얀 털만 남아 그야말로 할머니 머리처럼 생겨 더 ‘할미꽃’이라는 이름이랑 잘 어울린다.
능소화의 꽃말을 알아보니 ‘그리움, 명예, 기다림’이라고 하는데 시골에서는 처녀꽃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또 양반꽃이라 해서 옛날에는 양반집에서만 키울 수가 있었다고 하며 어사화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능소화에도 전설이 있는데 ‘소화’라는 궁녀가 임금의 사랑을 받아 ‘빈’으로 까지 올랐는데 어느 날부터 임금이 찾아오지 않아 날마다 기다리다 쓸쓸히 죽어갔는데 죽기 전에 왕이 자주 지나는 담장 밑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겨 그렇게 해주었고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지금의 능소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더운 여름철에도 곱게 피어난 꽃들을 찾아볼 수 있다. 토끼풀도 피어있고 도라지꽃도 피어있고 수국이 요즘 많이 피어난다. 아이와 함께 여기 저기 핀 꽃도 찾아보고 사진도 찍으며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무더운 여름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이길남 격포초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