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약속
나와의 약속
  • 이영진
  • 승인 2018.07.1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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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헌혈을 시작하며 헌혈 목표를 50회로 정했다. 지난 5월 17일 50번째 헌혈로 예상보다 빨리 목표를 달성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100회까지 도전해 볼 생각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혈색소가 높아 혈장이나 혈소판성분헌혈보다 전혈 헌혈을 하는 것이 내 건강에도 혈액이 부족한 환자에게도 더 도움이 된다. 전혈 헌혈(2개월)은 성분 헌혈(2주)에 비해 헌혈 가능주기가 길다. 50대 중년의 나이에 쉽지 않지만 내 삶의 버킷리스트에 ‘헌혈 100회’를 추가했다.

  헌혈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는 “맑은 샘물”, “우리 몸의 항상성” 이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생명체는 태어나서 역할을 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우리 몸의 장기 중 골수는 임신 30주부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줄기세포에서 혈구를 만들어내는 맑은 샘물과 같은 곳이다. 매일 만들어지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는 신체 상황에 따라 부족하면 더 만들고 많으면 덜 만들어 항상성을 유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혈구는 몸 안에서 일정 기간 활동하다 소멸한다.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좋은 골수 환경, 충분한 줄기세포 수, 영양분 등이 필요하다. 따라서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남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신체 조건을 부모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증거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사상의 영향과 “신체발부 수지부모 (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 때문에 장기 기증에 선뜻 나서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고형장기 이식은 공여자의 몸에서 장기 일부를 떼어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으로 공여자의 장기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나, 헌혈은 장기기증에 포함되나 헌혈자의 장기 손실이 없이 혈액을 환자에게 줄 수 있다. 의학적으로 허혈성심장질환에 대한 유병률은 여성의 폐경기를 기점으로 폐경기 전에는 남자가 폐경기 이후에는 여자가 높다고 한다. 일정간격으로 헌혈하면 혈액점도가 낮아져 허혈성심장질환 발생이 낮아진다고 하니 건강한 사람이 주기적으로 헌혈하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맑은 샘에서 물을 사용하면 할수록 더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헌혈자는 건강에 대한 자부심과 남을 돕는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ABO혈액형을 밝혀내어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한 칼 란드스타이너(Karl Landsteiner) 의학자 덕분에 수혈을 받는 환자들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의 업적을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그의 생일인 6월 14일을 세계헌혈의 날로 정했다. 올해는 칼 란드스타이너의 위대한 업적을 생각하며 그날에 맞춰 헌혈했다. 나와의 약속 100회 헌혈은 이제 건강관리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헌혈은 자신에게도 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일이다.

 이영진 / 원광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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