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외계인
뜬금없이 외계인
  • 김차동
  • 승인 2018.07.1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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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실소를 금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조그만 전동차 뒤를 졸졸 따라가는 자동차 모습이라니.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남들은 이제 막 숨 가쁜 출근길을 마무리하고 회의에 들어가 졸린 눈을 애써 참아내고 있을 즈음 나는 1차 퇴근을 하고 있었다. 가볍게 씻고 2차 출근을 할 때까지 조금은 여유가 있었으므로 서두를 일이 없었다. 전동차 뒤를 졸졸 따라가는 일은 그래서 살짝 재미있기까지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전동차가 등장한 것은 겨우 두어 해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노란 가방, 노란 모자, 노란 점퍼의 야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가 못 가는 곳은 없다.

 1994년 6월 서울 지하철 노조가 파업하며 명동성당 점거 농성을 벌일 당시 삼엄하게 대치했던 경찰과 노조원 모두를 뚫고 들어간 사람이 있다. 바로 야쿠르트 아줌마였다. 그녀의 암호는 간단했다. “추기경님 야쿠르트 배달가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후배가 봤다는 영화 이야기가 떠올랐다. 개봉관이 워낙 적어 지방에서는 보기 어렵다는 영화였는데, 지구 멸망 하루 전날 지구에 잠입한 외계인들이 생일을 맞은 네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준다는 내용의 SF였다.(백승빈 감독, ‘나와 봄날의 약속’, 2018) 영화 속에서는 외계인의 대장이 야쿠르트 아줌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10년 동안 작품 구상만 하는 영화감독에게 그녀는 팬을 자처한다. 이런 설정에 대해 감독이 내세운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안전한 모습으로 인간 사회 곳곳에 침투할 수 있으니까.”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웰에서 비행체 잔해와 시체가 발견됐다. 이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외계인을 모티브로 삼으며 상상력을 자극했다. 전 세계에서 UFO와 외계인에 대한 목격담도 이어졌다. 정부가 숨기는 은밀한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UFO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좀 더 오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도 강원관찰사 이형욱이 공문을 올려 보고한 내용이 등장한다. 간성군과 원주목, 강릉부, 춘천부, 양양부 등지에서 우뢰와 북 같은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고 큰 동이와 같은 물체가 매우 크고 화살처럼 빠르게 날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은 수년 사이 고해상도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전 세계에 급속도로 늘었는데 여전히 UFO 사진은 흐릿하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모습이 공개된 사진 수는 많은데 시원하게 ‘이거다’ 싶게 결정적인 것은 없다.

 ‘가장 안전한 모습으로 인간 사회 곳곳에 침투’했으면서 ‘그럴 듯하게 뭔가 많기는 한데 시원하게 이거다 싶은 것은 없는’ 그것. 무엇이 떠오르는가? 영국에서 사전을 만들어내는 ‘콜린스’는 지난해 이것을 ‘올해의 단어’에 선정했다. 이것은 ‘Fake News’ - 바로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의 폐해가 국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가짜 뉴스가 극에 달했던 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였다. SNS의 발달로 뉴스의 생산과 유통, 소비는 쉬워지고 자격의 장벽은 위협받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언론이 나서서 가짜 뉴스를 유통, 소비할 뿐 아니라 심지어 생산까지 해냈으니 자격 운운할 일도 아닌 셈이다. 확인되지 않고 확인할 의지도 없는 가짜들이 손가락 몇 번 움직임으로 전 국민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가짜들은 내 손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환을 거듭하다 이내 진짜와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것은 정보의 학습 효과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기도 하고 여론을 주도한다는 의식의 성장 때문이기도 하다. SNS를 통해 가까운 지인들이 보내온 뉴스를 받아보다 보면 신뢰 집단 안에서의 연대 의식은 뉴스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시키게 된다.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친 집단 내부에서 정보에 분석이 더해지며 믿고 싶은 맞춤형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뉴스’라는 프레임 때문인지 최근 언론에서 먼저 앞다투어 ‘팩트 체크’라는 검증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2017년 한국언론학회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언론 이용자의 86%는 가짜 뉴스를 걸러내는 팩트 체크를 의무화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늦었지만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다.

 다시 외계인이 야쿠르트 아줌마로 변신해 나타난 바로 그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감독은 외계인에 대해 ‘저마다 만나는 외계인은 사실 그들이 불러낸 저승사자’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절실하게 원했던 외계인의 선물은 달콤하지만,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에는 대가가 따른다.

 김차동<전주MBC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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