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의 함정에 빠진 전라북도와 전주
사례의 함정에 빠진 전라북도와 전주
  • 장걸
  • 승인 2018.07.0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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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사례, 우수사례, 벤치마킹, 모델링 등등 사례와 관련하여 참 많은 용어들이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용어들을 근거로 정책과 사업들이 설계되어 우리의 삶에 깊숙이 녹아 있다. 또한 국가부처, 지자체 행정, 국회?광역?기초의원들은 국내?외 사례를 배워 국가와 지역의 활력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공공분야뿐만 아니라 민간분야까지 대한민국은 더 좋은 사례, 더 많은 사례를 검토하고 학습하여 정책과 사업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거의 지배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례’의 함정에 빠지는 일 또한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정책과 사업의 발굴에서 관련 사례가 없으면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실제로 정책?사업화 과정의 구체화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의 현실에 맞지 않는 사례가 잘못 적용되어 동력을 상쇄시키는 일도 벌어진다.

 물론 어느 시기까지는 앞선 정책과 사업들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유의미한 일이며 벤치마킹을 통해 적용되면 발전의 큰 기틀을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선 지역과 사례의 검토가 참고의 수준을 넘어 반영된다면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바탕으로 도시가 발전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제가 사라지게 될 것이며 선진지역의 복사(Copy)도시화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벤치마킹 도시와 사례가 프렌차이즈(Franchise-독점권)를 주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으나 자본력이 크고 인구수가 많은 후발 도시에 추월당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한 공직자는 요새 말로 웃픈(‘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상황을 예로 든다. 정책이나 사업을 제안하게 되면 많은 상사들이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덧붙여 오라.’며 ‘사례가 없으면 추진하기 어렵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 안의 코끼리’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아는 문제지만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현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피해를 입을까봐 누구도 해결하지 않거나 곤란해 하는 것’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고민이 좀처럼 현실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생각해본다.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수당’, 그리고 ‘서울페이’ 등이 논란 속에서도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청년들의 아픔과 소상공인들의 힘겨운 상황을 지자체가 보듬을 수 있게 한 상황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물론 많은 사례들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닐 것이다. 필요하다고 느끼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혁신적인 동력이 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인 구글의 8대 혁신 원칙 중 ‘어디서든 아이디어를 찾아라. 모든 것을 공유하라. 상상력으로 불을 지피고 데이터로 기름을 부어라.’ 등 3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례를 검토해야 할 도시로부터, 사례가 될 도시를 위한 정책과 사업이 필요하다. 전주는 대한민국 도시재생의 1번지이다. 전주한옥마을은 도심팽창과 각종 규제로 슬럼화가 진행되던 지역을 전통문화도시 추진 정책을 통해 정말 멋지게 재생시켰으며 문화적 도시재생의 모델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듯 전주는 역량을 집단지성화하여 성공으로 이끈 도시이다. 최근에는 탄소산업, 드론 축구, 드론 공연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가능한 전북과 전주로 가는 길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방 안의 코끼리’는 여전히 우리의 옆 자리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성공 사례, 좋은 사례, 선진사례’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유연한 사고와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한 문화적 조직으로의 개선점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방 안의 코끼리’를 과감히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그래서 성공적인 사례를 만드는 도시를 넘어 ‘성공한 도시’로 시민들의 자부심이 되는 도시가 되길 희망한다.

 장걸<(재)전주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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