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결단이 그리운 정치
다산의 결단이 그리운 정치
  • 송일섭
  • 승인 2018.07.0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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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에게는 운명의 비태(否泰)가 끝없이 반복되었다. 어찌 보면 그의 삶은 어느 한 순간도 격정과 불안이 겹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다산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죽은 날 태어났다는 그 운명적 결합이 그저 두렵다. 그가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었을 때도 사도세자의 죽음은 끝나지 않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벽파와의 끝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에게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소외된 남인 그룹이라는 점, 그리고 자신의 중형 정약종과 조카들이 믿었던 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다산은 서학(천주교)을 통해 실학에 빠져들지만, 유교적 윤리를 부인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논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다산은 서른여섯 되던 해애 「변방사동부승지소」라는 통해서 서학과 절연했던 이유를 분명하게 밝힌다. 그러나 반대파들은 끝까지 놓아주지 않고 사사건건 다산을 끌어들여서 괴롭힌다. 심지가 강건했던 정조마저도 그들의 주장을 무시하지 못하고 금정찰방이라는 한직으로 보내기도 하고, 변방의 군수로 나게 있게 하면서 반대파를 달래기도 했다.

 밤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정조와 학문과 경세를 논하며 개혁에 앞장섰다. 그런데 정조의 개혁을 굳건하게 받쳐주던 번암 체제공(蔡濟恭) 영상(領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반대파의 저항은 봇물 터지듯 밀려온다. 또 다시 권철신을 비롯한 자신의 형님 정약전을 추국(推鞫)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온다. 이런 상황에서 다산이 더 이상 관직에 있다가는 조정은 파쟁의 회오리에 말려들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는 마침내 관직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린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자신 같은 사람은 애초에 벼슬살이할 생각을 말았어야 했다는 추회(追悔)가 가득했다. 오직 두려운 것은 부족함이 많은데도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임금의 마음에 누를 끼친 것이라고 하였다. 가형(家兄) 정약전은 벼슬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조정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그의 행적은 평범했다. 그런데도 형을 끌어들임으로서 다산을 제거하고 마침내는 조정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정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며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임금에 대한 신하의 도리라고 생각한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인다. 자신의 직명을 깎아내리고 사적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도 없애 달라고 한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살, 한창 야망으로 들끓던 나이 아닌가. 그러나 다산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상소를 올릴 때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착잡했을까. 정조도 그의 가상한 뜻을 이해하면서도 걸출한 인재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한 달 이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해 7월에야 다산은 벼슬살이를 마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의 뒷날이 평온한 것은 아니었으니 더 안타깝다.

 필자는 이 대목을 읽고 있는데, 문득 우리나라 정치판이 떠올랐다. 지난 번 6.13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펼침막을 내걸고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던 바로 그 일이다. 이번의 선거운동에서도 ‘종북과 빨갱이’ 논쟁이 이어졌다. 정책이나 대안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거친 비난과 폭언, 마타도어가 난무했다. 전운(戰雲)이 감돌았던 한반도에 화해무드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들은 어깃장을 놓기에 바빴다. 수십 년간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국민들은 싫증을 느꼈고, 그 결과 그들에게는 선거참패라는 아픔을 안겼다. 구태와 패거리 정치, 반대와 어깃장을 일삼는 그들을 보면서 보수의 유권자들이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까지도 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6월 14일 아침, 참회의 펼침막을 내걸었던 그 결연함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여전히 보수의 개혁은 멀고 파벌싸움에 만 있다. 정치판에서 떠나버린 임을 그들은 아직도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서로 나가라고만 할뿐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산은 모든 것을 자신의 불민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훌훌 벗어버리고 조정에서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거듭나기 위해서 은인자중하겠다는 사람도 없다. 어떻게든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버티겠다는 결의만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다산의 결단이 참으로 위대해 보인다. 이쯤해서 우리는 다산의 물러남의 정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낡은 이념에 경도된 사람, 관행에 안주하는 사람, 협력적 마인드가 결여된 사람, 이분법에 의한 분열주의자, 국민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는 이제 없어야 한다. 자신을 굽어보는 냉철함으로 거듭나는 정치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국민의 눈높이보다 낮은 수준으로는 언제라도 국민들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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