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杞憂)와 세르비아를 위한 변명
기우(杞憂)와 세르비아를 위한 변명
  • 장상록
  • 승인 2018.07.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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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杞憂). ‘미래에 대한 쓸모없는 걱정’을 말할 때 이 고사를 인용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문제’가 정말 헛된 망상인가. 공룡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던 순간은 분명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있었다. 확률적으로 희박한 문제일 뿐 그 걱정 자체가 잘못 된 것은 아니다. 그런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고 인류의 화성 이주 계획도 그 연장선상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이다.

  여기저기서 한국 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사파 정권이 결국 월남 공산화의 길로 한국을 이끌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는 한국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한국인은 초저출산율인데 날로 유입되는 난민과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은 이 땅에서 다산(多産)을 통해 결국 이 땅의 주인이 되고 한국인은 종속적인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들은 극히 일부에 속한다.

  이런 걱정들은 기우와 루머라는 말로 간단히 규정할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른다. 그럼 그런 걱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는 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들의 걱정 속에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갈등의 진단에는 귀 기울일 사회적 의무가 있다.

 제주도에 난민이 대거 유입된 상황은 단순히 인도주의적 사고로만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유럽이 난민 유입으로 겪었고 현재도 진행 중인 각종 문제들에 대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한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난민이 ‘수 십 만원이 들어있는 한국인 지갑을 찾아 돌려줬다.’거나, ‘무슬림 남편과 수 십 년을 살았지만 걱정하는 그 어떤 문제도 없었다.’는 미담으로 마무리 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 향후에 있을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의 폭발성을 안고 가는 문제다. 한국은 이민으로 이뤄진 다인종 다민족 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한국사에서 단일 민족의 문제는 단순한 혈통에 관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외침으로 혼혈이 됐을 텐데 무슨 단일민족이냐?’는 물음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정체성(identity)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인종적으로 다양하지만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는 흑백의 구분이 없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다르지 않다. 만일 그런 정체성이 없었다면 그 수많은 대륙과 해양의 침략 속에서 한국사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른바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 적이 없다.

  그들은 한국인이다. 그들에게 다문화라는 수식어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그것은 세종이 선의를 가지고 얘기한 ‘백정’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난민을 비롯한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설계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영국이 EU를 탈퇴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도 그 부분이며, 난민들이 필사적으로 부다페스트 역에 도달하고자 하는 바도 그곳이 EU의 관문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치적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 인권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이라는 EU에서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에 한국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월드컵에서 세르비아를 침몰시킨 골을 넣은 스위스 선수의 세레모니가 인상적이다. 그들은 코소보계였다.

 정치적 행위를 금지한 FIFA룰과는 별개로 세르비아로부터 아픔을 당한 조국에 대한 사랑이 엿보인다.

  그럼 세르비아인은 정말 악한 사람들일까. 잠시 그들의 항변을 들어보자.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결사대 10만이 경상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맞서다 전원 옥쇄하고 승리한 일본은 그곳에 일본 사람들을 대거 이주시킨다고 생각해보세요. 수 백 년이 흘러 경상도에 살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일본계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느 날 이렇게 요구합니다. ‘한국에서 독립하겠다.’ 이제 한국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코소보는 우리 선조 10만 명이 오스만 투르크에 맞서 싸우다 전원 전사한 피가 스며있는 땅입니다.”

 기우를 헛된 걱정으로 만드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우리의 의무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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