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앞둔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개관 앞둔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 김종일
  • 승인 2018.06.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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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정세에 뒤떨어졌던 대한제국은 독립국가로 보존해주겠다는 일제의 속임수에 넘어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더니 1910년 8월 29일 나라를 빼앗겼다.

 나라는 빼앗겼지만 뜻있는 선비들과 백성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의병으로 또는 독립군으로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일제 제국주의 세력과 맞서 험난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우리 민족의 3.1운동에 자극받아 중국에서는 5.4 항일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등 3.1운동은 민족 자결권의 민족사적 세계사적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우리고장의 만세운동은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3.1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고장 사람으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이었던 김병수가 기독교 계통의 연락망을 통해 독립선언서 200매를 받아 군산에 내려와 구암리 영명학교 교사에게 전달했다.

 군산에서 3월 6일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했으나 3월 4일 거사계획이 발각돼 일경에 의해 주도했던 일부 교사들이 체포되자, 남은 교사를 중심으로 격분한 학생들은 체포된 교사의 석방을 요구하였고, 3월 5일 만세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이후 3월에서 5월까지 시위 28회, 참여인원 31,500명, 사망 53명, 부상 72명, 투옥 195명의 희생을 치루면서 전북지역에서 가장 많은 만세 시위를 이끌어냈다.

 우리고장 군산에서 일어났던 3.1만세운동은 한강이남 최초의 3.1만세 운동으로써 이후 3월 10일 광주, 15일에는 김제 원평에서, 그 다음날인 16일은 태인에서 각각 만세운동이 이어졌고, 4월 4일 익산과 김제 만경에서, 이어 목포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는 등 호남 각지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군산 3.1운동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역사적 의의가 있는 군산의 독립운동 역사를 후세에 영원히 기리고자 군산시와 군산3.1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8년 11월 20일 구암동산 입구에 위치해 있는 구 구암교회를 리모델링해 3.1운동 기념관으로 개관했으나, 건물이 노후화되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구암동산 언덕 밑에 새롭게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해 오는 6월 19일 영광스러운 개관식을 갖는다.

필자는 전북 서부지역 보훈 선양업무를 총괄하는 담당자로서 그동안 구 3.1운동 기념관과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 우리 지역 청소년들의 나라사랑 탐방 체험활동 등 애국정신 함양의 확고한 정신적 지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꼈왔다.

 또한 앞으로 새롭게 건립되는 100주년이 그 역할을 이어받아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현충시설로써 더욱 큰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북서부보훈지청에서는 정부의 시책에 맞춰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현충시설을 직접 방문해 선열들이 피와 땀으로 이루어내고자 했던 조국독립과 국토수호의 숭고한 의지를 체험하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현충시설 체험 탐방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현충시설로써 군산3.1운동 기념관과 정읍 구파백정기 기념관, 고창의 일광기념관 등은 다양한 체험활동 지원 등으로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관내 다른 지역의 현충시설을 활용한 의미 있는 체험활동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소망하면서 개관을 앞둔 군산 3.1운동 100주년의 기념관의 앞으로 나라사랑 체험 교육장으로써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김종일 전북서부보훈지청 보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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