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을 통해 파란 옷을 입은 정치 거물이 대거 등장했다. 전북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졌다. 문 정부와의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민망해졌다. 이제는 정당정치를 넘어서 시민정치가 절실한 시점이 왔다. 지선에서 갈라진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파란 옷을 한쪽에 내려놓을 때다. 그러한 이유를 하나씩 짚어본다. 편집자 주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을 일찌감치 확정 지은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전북발전을 바라는 마음은 당을 떠나 우리 모두 하나다”라고 당선소감을 말했다. 이는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민선7기 정치변화를 꿰뚫어 본 시각일지 모른다. 지선을 전후해 전국의 정치 환경은 그야말로 지각변동 했다. 지난 2014년 치러진 제6회 지선에서 광역단체장은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8명과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9명으로 양분됐다.
가치판단을 떠나서 전국은 균형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정권교체와 함께 전북은 전국의 중심으로 부각하는 기회를 잡았다.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장차관 등이 잇단 전북을 찾으며 정부와의 유대를 과시해 왔다.
그러나 이번 지선에서 광역단체장은 더불어민주당 14명과 자유한국당 2명, 무소속 1명으로 교체됐다. 민주당은 경북·대구·제주도를 내줬을 뿐 전국을 휩쓸었다. 이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이어졌다. 전국 226개 시군 단체장 중 민주당은 151곳을 차지했다.
자유한국당(53곳)과 민주평화당(5곳)을 합해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지리적 영역이 전통적인 강세인 전라권을 넘어서 전국의 확장된 지선이었다.
그렇다면, 전북의 위치는 어디쯤으로 이동했을까? 그동안 전북도는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며 민주당과 문 정부에 친밀함을 쌓아왔다.
전북은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64.8%라는 전국 최고 득표율로 구애를 보냈다. 높은 지지율만큼이나 전북과 문 정부의 친밀감이 과시되 왔다.
전북의 오랜 현안인 새만금과 국제공항 등 거침없는 행보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선 후 전국의 상황은 달라졌다. 소위 문 정부가 챙겨야 할 식구들이 늘어났다.
또 지선은 정치 거물을 대거 등장시켰다. 전통적인 보수텃밭에 깃발을 꽂은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자를 비롯해 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자,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전국단위 정치 거물이 탄생했다.
전북은 전국적인 인지도와 문 정부와 친밀감, 정치적 영향력도 무엇 하나 전국을 압도할 수 없는 형편이다.
타 시도와 비교해 문 정부와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멋쩍은 상황까지 몰린 실정이다. 전북은 지선에서 민주당과 문 정부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전국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송 지사의 당선소감은 지선 후 환경 변화를 꿰뚫어 본 발언일지 모른다. 지선 후 거칠어진 전북상황을 본능적으로 감지해 내뱉은 발언일지 모른다.
이는 정당정치를 넘어서 시민 정치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시민 정치를 바탕으로 전북현안을 풀어보겠다는 속내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전북역사는 시민 정치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산 증인이다.
지난 2003년 부안 방폐장 건립시도와 2006년 완공된 새만금 물막이 공사 등은 현재까지 씻지 못하는 상처를 낳았다.
이처럼 민선 7기 지방정부는 시군을 넘어서 시도 간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 현안들이 넘친다. 실제로 새만금국제공항은 주변시도의 거센 반대를 관통해야 한다. 전국 흐름에 눈치를 봐야 할 민주당의 지원사격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정치환경이다. 시도별 의견이 엇갈린 사업마다 그러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각종 현안마다 전북 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지 않는다면, 현안을 풀어갈 동력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지선 후 내부적으로 진영싸움에 빠지면,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아지면서다. 정부가 손에 쥔 사업들에 대해 손을 털 빌미가 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전북은 지선 과정에서 지지하는 후보자 또는 정당별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익산시와 장수군 등 일부 시군은 민주평화당과 무소속의 깃발이 꼽혔다. 광역·기초의원도 정당별로 새로운 인물이 선출됐다. 정당정치로 뛰어넘어 시민 정치로 변화하지 않고는 민선 7기의 굴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북을 넘어서 전국의 정치환경이 시민의 갈등이 발목을 잡는다면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정치 환경으로 변화한 것이다.
지역 정가 한 관계자는 “전북만이 현 정부에 편승했다는 우물 안 개구리가 시각에 빠져서는 안된다”면서 “지선을 통해 타 시도에서는 거물급 정치인이 탄생했고, 앞으로 더 많은 국회의원이 배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선이 끝난 이 시점에서는 이제 전북은 정당정치를 넘어서 시민이 주인인 시민정치로 갈아타야 할 시점”이라며 “시민의 지지를 원동력으로 전북이 나아가야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