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는 아니다
재판거래는 아니다
  • 유길종
  • 승인 2018.06.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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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3 지방선거와 북미 정상회담의 와중에 우리 사법부의 내홍이 극에 달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의 내용을 두고 사법행정권의 남용 논란에서 그치지 않고 ‘재판거래’ 의혹까지 번진 것이다.

 지난 5월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가 공개되고, 이어서 관련된 주요 문건의 파일들까지 공개되었다. 그 내용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안하무인격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의 어설픈 정무적 시각은 실소를 자아내기 족하다. 사법행정권이 남용되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별조사단이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회의, 전국법원장회의 모두 검찰 수사 등 형사조치에는 반대하였지만,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있었음을 인정하였고,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하여 형사절차를 포함하는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추궁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특별조사단은 사법행정권의 남용과 함께 “재판에 영향을 실제 미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고심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미명하에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밝혔고,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재판거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뚜렷한 근거 없이 ‘재판거래’ 운운하는 것은 문제이다. ‘재판거래’라는 것은 판사가 사건의 결론을 법과 양심에 따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건의 결론을 흥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의혹 제기는 몇 가지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첫째는 ‘재판거래’ 사례로 지목된 사건들은 문건 작성 당시 이미 선고가 내려진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이미 판결이 선고된 사건으로 거래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만한 사건들, 즉 박근혜 정권이 좋아할 만한 사건을 정리하여 올린 것들로 보인다.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의 추진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청와대를 설득하고 지원을 받기 위하여 박근혜 정권이 좋아할 판결을 열거하며 대법원의 입장을 홍보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행동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재판거래’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는 경험적인 측면이다. 필자는 법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사건에 관하여 법원행정처나 법원장 등 행정라인이 관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법원장 등 행정라인이 상당한 관심이 있을 사건도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에 법원장이나 행정라인에서 뭐라 언급하는 것을 단 한 차례도 경험한 적이 없다. 필자는 일부 사건에 관하여 ‘재판거래’의 의혹이 있는 듯이 주장하는 일부 판사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은 재판을 거래한 적이 있는지, 그들은 그들이 재판하는 사건에 관하여 법원장 등 행정라인이 관여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정말로 묻고 싶다.

 그동안 사법행정권의 남용은 있었지만, 그것이 ‘재판거래’는 아니다.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는 본질이 다르다. 본질이 다름에도 이를 혼동시키는 것은 혹세무민이다. 특별조사단이 보고서에서 재판에 영향이 없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어정쩡하게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기재한 것은 법원의 판결에 근거 없는 불신을 야기한 자해행위이다. 사법행정권의 남용과 ‘재판거래’ 의혹은 본질이 다르다. 그럼에도 주류 언론조차 이를 구분하지 않고 마치 동일한 것인 양 일반인들의 혼동을 부추기고 있고, 일부 판사들도 이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대법원이 과거의 사법행정권 남용행위를 검찰에 고발하건 어떻게 하건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재판거래’ 의혹은 단지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조계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갉아먹는 것이다. 이미 우리 사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우려할 수준이고, 사법신뢰의 회복을 위한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한 마당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세간의 혼동을 방관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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