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경제학자가 인정하는 성공적 경제정책
외계인 경제학자가 인정하는 성공적 경제정책
  • 채수찬
  • 승인 2018.06.12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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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갈 별자리의 항성인 알파-센타우리는 지구로부터 4.27광년 거리에 있다. 알파-센타우리 주위를 도는 행성인 제다는 모든 면에서 태양계의 행성인 지구와 흡사하다. 다만, 공전의 방향이 반대여서 모든 법칙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지구상의 법칙과 반대칭(anti-symmetric)이다. 거기 사는 제다인들의 경제발전 개념 역시 지구인들의 경제발전 개념과는 반대칭적이어서, 저소득을 추구하며, 고용률이 낮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경제성장을 싫어한다. 제다에 사는 반대칭 경제학자들이 모범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지구상의 K-나라를 다녀온 방문기를 옮겨본다.

 우선 이 나라 정책 책임자로부터 브리핑을 받았다. K-나라 지도자는 일자리현황판을 매일 체크하겠다고 선거 때 약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지도자가 가장 역점을 두는 일자리 정책의 근간이 되는 정책수단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고속인상, 근로시간 감축 등이다. K-나라의 일자리 정책들을 보건대, 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고용을 줄이는 데 있음에 틀림없었다. 정책시행 이후 실제 통계수치들을 봐도 실업률이 늘어나고, 구직 단념자가 늘어나는 등 정책목표를 아주 잘 달성하고 있었다. 매일 일자리 현황판을 체크하는 지도자가 얼마나 흐뭇해할 것인가.

 다음으로 산업혁신정책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게임소프트웨어로 성공한 벤처기업가에게 산업혁신위원장을 맡기고, 젊은이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하고 있는 가상화폐기술발전을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건대, 이 정부는 게임·도박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만들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한 시험에 매진하고 있고, 정부도 공무원 수를 더 늘리겠다고 하는 걸로 봐서, 도박사(gambler)만 키우는 게 아니고 안정추구형 젊은이도 배려하는 U자형 목표를 하고 있었다. 또한 해고를 어렵게 하는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줄여 인력이 새로운 산업으로 이동하는 것을 어렵게 하여 산업혁신이 빨리 진행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도 돋보였다.

 이 정도 브리핑만 받고도 K-나라가 성장을 억제하는 바람직한 정책을 펴고 있음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용이 줄어드니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 제다인들은 K-나라 정부의 정책을 「성장억제형 저소득정책」이라고 명명했다.

 K-나라처럼 성공적인 반대칭 경제정책을 실행하려면 어떤 사람들에게 정책을 맡겨야 하는지 정책 책임자에게 물었다. 그가 말한 비결은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는 사람이나, 정책수단이 정책목표 달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실증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정책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수요공급 법칙의 틀에서 문제를 보는 사람들은 절대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제다에서 온 반대칭 경제학자인 우리들은 여기서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K-나라에서 반대칭 경제정책을 성공시킨 사람들을 제다에 초청하여 정책강의를 듣기로 했다. 알파-센타우리까지 오는 길이 무료하지 않도록 타임머신 일등석 티켓을 제공하여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을 경유해서 오도록 했다. 저소득층의 소비부족으로 자본주의가 망할 거로 예측했던 칼 마르크스도 만나고, 유효수요의 부족을 정부재정지출 확대로 보완할 것을 제안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즈도 만나 이 천재 경제학자들이 21세기에 살았다면 어떤 이론과 정책을 제안했을지 물어보고 우리에게 답을 전해주도록 부탁했다.

 무역전쟁으로 선진국들이 티격태격하고 있고, 미국의 금리인상 등으로 인해 신흥국들이 외환위기에 휘말리고 있지만 K-나라의 경제정책을 맡은 사람들은 천하태평이었다. 지구로부터 4.27광년 거리에 있는 알파-센타우리 항성의 제다 행성에 사는 우리들의 반대칭 경제학 교과서에는 무역전쟁이나 금리인상이 기업수익성을 악화시켜 반대칭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쓰여있다.

 채수찬<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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