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록거울 그리고 도편추방제와 민주정
볼록거울 그리고 도편추방제와 민주정
  • 장상록
  • 승인 2018.06.07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통안전을 위해 설치한 볼록거울은 운전자에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적잖은 거울엔 누군가의 정확한(?) 투구에 의한 상처가 자리한다. 한적한 곳에 외롭게 방치된 공중화장실에 들어설 때면 담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곳 상태가 담대함을 넘어서는 경우 역시 적잖다. 누군가는 그에 대해 이런 설명을 한다.

  “그런 행동은 모두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하던 심정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일이다.” 수긍하는 바 없지 않다.

  나라 잃은 백성이 식민지배의 흔적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에는 일견 타당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공권력을 대하는 시민의 태도역시 그러한 설명의 범주에 있는지 모른다. 일본제국주의와 군사정권의 경험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극대화 시켰기 때문이다. 취객이 파출소에서 경찰관을 향해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고 폭력배들은 대로에서 경찰관 입회(?)하에 활극을 공연하는 현실은 그런 역사적 상황을 살피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다.

 분명히 해둘 것은 공공용물(公共用物)은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고 국민 모두가 주인이다. 그것이 파손되면 내 세금이 그곳에 들어간다. 공권력(公權力) 역시 다르지 않다. 그것은 내게 위협과 피해를 주기 위한 리바이아던(leviathan)이 아니다. 공권력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에서 나와 가족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 공권력이 훼손되면 그 비용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내 가족이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주인인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관련해 한 가지 묻게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도편추방제를 넘어섰는가?

  사마천에게 궁형의 치욕이 있었다면 투키디데스에겐 반역자라는 오명과 조국에서의 추방이라는 아픔이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시련이 있어서 불멸의 저작인 [사기]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투키디데스가 추방당한 것은 클레이스테네스가 참주의 등장을 막기 위해 고안했다는 도편추방제에 의해서였다.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마라톤 전투, 살라미스 해전은 물론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까지 맹활약을 펼친 영웅 아리스티데스와 관련된 내용이다. 도편추방제 선거가 있던 날, 문맹이었던 한 시민이 그에게 부탁을 했다. “난 글자를 몰라서 그런데 아리스티데스의 이름을 써주실 수 있겠소?” 이에 아리스티데스는 “그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소?”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시민은 이렇게 답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주변에서 하도 아리스티데스를 칭찬해대니 진저리가 나서요.”

  그 말을 들은 아리스티데스는 묵묵히 자신의 이름을 도편에 써줬고 결국 추방당했다.

 도편추방투표에서 뽑힌 인물은 아테네 국외로 10년간 추방되어야 했으며, 변론 혹은 항소는 허용되지 않았다. 투키디데스나 아리스티데스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제도가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 그 제도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는 것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민회에서 시민들은 당년의 도편추방 투표를 실시할 지 여부를 결정했다. 그리고 결론이 실시로 내려지면 투표는 2달 안에 시행하도록 했다. 실시 여부의 결정과 투표일에 2달의 차이를 둔 이유는 냄비근성을 방지하고 각종 토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추방된 당사자에겐 아테네 시민권을 유지시킨 채 아테네로 들어오는 것만 10년간 금지했을 뿐이다.

 10년이 지난 뒤에는 공직에 복귀하는 것도 허용됐고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경우에는 기한도 단축시켰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 제도가 얼마나 관대하며 합리적인지는 훨씬 후대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로마제국에서는 정적의 코를 잘라버린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이는 것보다는 인도적이다.”

  공공용물과 공권력에 대한 논리와 인식은 물론 민주주의의 정의에 관해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 보다 과연 나은가?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