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황토현 전적지·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읍 황토현 전적지·동학농민혁명기념관
  • 김영호 기자
  • 승인 2018.06.06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학농민혁명국가기념공원(황토현전직지)
 전북 정읍에는 지난 1894년 부패와 봉건에 맞서고자 봉기한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 수만의 동학농민군이 전주감영에서 파견한 관군을 크게 이긴 최초 전승지인 황토현(黃土峴) 전적지가 있다.

 정읍 황토현 전적지는 1976년 4월 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34호로 지정됐다가, 1981년 12월 10일 사적 제295호로 승격 지정됐다.

 황토현 전적지는 그 면적이 164,658㎡에 달하며, 해발고도 70m에 위치해 있다.

 봉기 당시에 황토현은 태인(泰仁)과 고부(古阜)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1894년 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대항하기 위해 봉기한 농민군들은 고부를 점령하고 1만여 명의 군사가 집결했다.

 농민군과 관군은 황토현에서 대치를 벌이다가, 4월 6일 밤 농민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하자 대부분 관군이 전사하고 농민군은 한 달 만에 호남지역을 석권하게 됐다.

 황토현 전투의 승리로 기세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농민군들은 정읍과 고창을 비롯한 주변 지역으로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전주까지 장악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죄없이 갇힌 죄수들을 석방하고 무기를 탈취했으며, 무장으로 진격해 40여 명의 교도를 구출했다.

 이곳에서 전봉준은 동학운동의 의의를 나타내는 포고문도 발표했다.

 결국, 황토현 전투에서의 승리는 동학농민운동을 크게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해 동학농민운동은 막을 내렸지만, 이 운동에서 보여준 개혁 정신과 민족 자주 정신은 민족 독립 운동의 전개에 큰 획을 그었다.

▲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경
 현재 황토현 전적지에는 희생자 추모시설을 포함해 연수시설, 전시 체험시설 등을 두루 갖춘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국가 사업으로 조성 중이다.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무기, 생활용품, 기록물 등을 전시 보존하고 있는 기념관을 비롯해 동학농민혁명 교육관, 갑오동학혁명기념탑 등 관련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상황을 방문객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역사 교육의 현장을 조성해 발길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4년에 개관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전라북도가 관리사업소를 두고 관리 운영해 오다가, 2011년부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관리 운영 중이다.

▲ 동학농민혁명기념관‘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동학농민혁명’특별 기획전
 오는 10월 31일까지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동학농민혁명’이란 주제로 특별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한국에 머물렀던 여행가, 외교관, 언론인, 선교사 등 서양인들이 남긴 자료와 기록을 통해 서양인의 시선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주요 전시 내용은 ‘여행가, 무장한 개혁자를 보다’, ‘외교관, 완벽한 승리자를 보다’,‘언론인, 순수한 애국심을 보다’, ‘선교사, 혁명가의 개혁을 보다’등으로 구성이 이뤄졌다.

 전시 자료는 영국의 저명한 여행가였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이 저술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한국에서 간행된 최초의 영문 잡지인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 캐나다의 장로교 선교사였던 엘리자베스 맥컬리(Elizabeth A. McCully, 1862~1941)가 저술한 ‘한알의 밀알(A Corn of Wheat)’등이 선보인다.

 서양인들은 저술 활동을 통해 반외세를 외치며 들고 일어났던 동학농민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한 애국심(Honest Patriotism)’이나 ‘개혁자들(Reformers)’, ‘혁명가들(Revolutionists)’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동학농민군의 애국 애족 정신과 개혁 사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관계자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앞으로 세계 역사 속에서 그 위상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국내·외에서 한정된 자료들만으로 평가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이 서양인들의 다양한 시각으로 재조명된 전시를 통하여 더욱 잘 알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영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