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여행과 전쟁 기계
살인 여행과 전쟁 기계
  • 정은균
  • 승인 2018.05.3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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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균의 학교뎐 7]
최초의 학교는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은 <왜 학교는 불행한가>에서 고대 학교들이 전쟁에 필요한 전사를 양성하는 일을 최초의 목적으로 삼았다고 보았다. 그다음이 세금을 걷기 위해 글을 쓸 줄 아는 관리 양성과 왕실을 지탱해 줄 종교에 필요한 사제를 기르는 일이었다. 이들이 다닌 학교는 모두 국비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국립기관이었다. 특권을 갖는 지배계층을 길러내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그래서 학교는 차별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우리는 고대 수메르의 필경사 학교나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 교육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수메르 학교는 인류 최초의 학교였다. 놀랍게도 기원전 2500년경부터 수메르 전역에서 운영되었다. 수메르 학교에는 남자들만 들어갔다. 후대에는 세속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지만 초기에는 신전의 부속기관으로 출발했다. 고대 수메르학의 세계적 석학인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아시리아학 명예교수는 수메르 학교의 원래 목적이 전문 직업인인 필경사를 양산하는 데 있었다고 보았다.

이들 필경사는 신전과 왕궁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류층에 편입되었다. 필경사 학교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아버지 역시 총독, 도시의 지도자, 대사, 신전 관리자, 군대 지휘관, 선장이나 함장, 고위직 세금관리, 다양한 종류의 사제, 관리자, 감독관, 건설현장 책임자, 필경사, 공문서 관리인, 회계사 등 사회 상류층이었다. 전형적인 특권 교육 시스템이다. 나는 이와 같은 특권화 시스템이 남성 엘리트들이 국가 권력을 보위하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상징 전략 실행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이해하고 싶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역시 국가주의 교육의 한복판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아테네는 오늘날 교양교육의 뿌리인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개인이 교양을 쌓고 진리를 탐구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큰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아테네 교육 시스템의 이면을 잘 살펴보면 아테네의 학교 역시 수메르 학교처럼 차별적인 특권화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school’의 어원은 ‘여가’나 ‘한가함’을 뜻하는 그리스어 ‘스콜레(schole)’다. 이는 고대 아테네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계층이 여유로운 자유민이었다는 점과 관련된다. 노예는 고된 노동이나 생업에 종사해야 했으므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이와 달리 자유민들은 충분한 여유 속에서 인간 삶의 고귀한 가치와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교양을 쌓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아테네의 자유민 엘리트 청소년들은 18세가 되면 국가에 충성 서약을 하고 2년간 교육을 받았다. 그 과정을 거친 뒤에야 완전한 시민 자격을 얻었다. 2년간의 교육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일정하게 통제되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스파르타의 국가주의 교육철학은 아테네보다 더 완고하고 치밀했던 것 같다. 스파르타는 사회 전체가 철저하게 위계화한 계급구조로 구성되었다. 통치 계급은 ‘호모이오이(Homoioi)’였다. 스스로를 ‘평등자’라고 부른 그들은 완전한 자유민이었다. ‘변두리 사람들’이라는 뜻의 반(半) 자유민인 ‘페리오이코이(Perioikoi)’가 두 번째 계급이었다. 가장 낮은 계급은 ‘헬로트(Helot)’였다. 그들은 대부분 피정복지 출신 노예였는데, 헬로트 7명이 스파르타인 한 사람을 받들 정도로 수가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평소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나면 출전해 스파르타 전사들의 보조병이 되어야 했다.

주지하다시피 스파르타는 모든 국민을 군인으로 만드는 병영 교육으로 유명했다. 20세~60세 사이의 스파르타 인은 모두 중장보병이 되었다. 전 국민의 군대화라는, 스파르타의 이례적인 교육 시스템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건국 초기 스파르타는 영토의 기틀을 다지고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그 뒤 영토가 넓어지고 노예 수가 늘어나자, 이들 노예를 잘 다스리기 위해 국가 전체를 완벽하게 군대화하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스파르타가 병영 국가화를 지향한 데에는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 노예들이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강했다.

스파르타식 병영 교육은 아이들이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스파르타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가 아기를 안고 경험 많은 노인이 있는 레스케(Lesche)라는 공회당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아기가 골격이 비뚤어졌거나 기형이거나 허약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깊은 골짜기로 가서 아기를 버렸다. 영아 유기가 국가 차원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스파르타 아이들은 7살에 아고게(Agoge)라는 공교육기관에 들어가 엄격한 신체 훈련과 군사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완전한 전사가 되는 20살 무렵까지 매년 한 번씩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 신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채찍을 맞는 극한 교육을 받기도 했다. 국가에 대한 복종심과 이를 위한 인내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나는 고대 스파르타의 국가주의 교육 시스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제도로 ‘크립테이아(krypteia)’를 들고 싶다. 크립테이아는 최고의 스파르타 전사가 되기 위한 최후의 비밀스러운 의식으로서, 국가가 명령한 일종의 ‘살인 여행’ 같은 것이었다. 이 여행에는 아고게 학생이 들판에서 일하는 건장한 노예(헬로트)에게 접근해 그들을 죽이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아고게를 졸업하는 스파르타 전사들이 국가의 명령에 완벽하게 복종하는 ‘전쟁 기계’가 되게 했다.

정은균 군산 영광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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