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풍류도를 잊고 산다(하)
우리는 풍류도를 잊고 산다(하)
  • 최정철
  • 승인 2018.05.28 1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는 전편에서 선비 정신을 말하기 전에 선비라는 실체를 살펴 봤다.

 이제 인이 선비 정신과 어떻게 같은 맥인지를 헤아려보자. 선비는 평소 자기 분야에서 지식을 쌓으며 수양을 하다가 자신이 받드는 대동 세상에 위태로움이 발생하면 즉시 떨치고 일어난다. 당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조의선인, 황산벌에서 계백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백제의 싸울아비, 삼국 일통 기수 신라의 화랑, 세계 정복을 이룬 몽골제국군에 맞서 끝까지 굴하지 않은 고려의 삼별초, 백의종군 마다않고 왜군을 물리친 조선의 이순신, 동양 평화를 위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심판한 대한제국의 안중근, 사진 한 장 남기고 폭탄과 함께 산화해 간 임정의 윤봉길, 주먹밥으로 주린 배 채우며 관동군과 대적한 대한독립군. 그뿐이랴, 민족 지도자 김구를 암살한 역사의 폐단아 안두희를 붙잡아 정의봉(正義棒)으로 처단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드높인 대한민국의 박기서 등등. 이들은 평소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함양하고 있던 당대 지식인, 즉 선비였다. 그들은 대동 세상 지키기와 정의를 위해 분연히 인의 길을 따랐으니 이로써 인의 세계가 선비 정신으로 이루어짐을 알 것이다. 장구한 민족 역사의 흐름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지식인들의 선비 정신은 ‘배우고 깨달은 옳은 사람’이 지녀야 할 정신적 응결체였고 이것이 바로 한국적 정신세계의 모태였다.

 인의 정신이 선비에 담겨있다면 그 표현 양식은 악(樂)이다. 옛 현인들은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만들 때의 매개체 기능을 악이 수행한다고 보았고, 악은 가무악(歌舞樂)으로 완성되어 인의 정신을 아우른다. 또 심신수련의 의미가 있으므로 가무악은 곧 선(仙)의 지경이다.

 그렇게 선비 정신(유)과 가무악(선)으로 의기와 심신을 세우니 이제 대동을 찾아나서는 구도(불)가 이어지면서 마침내 현묘한 도가 세워진다. 이것이 바로 풍류요 풍류도다.

 전주는 분명 풍류도의 고장이라 할만하다. 예향이니 만큼 선의 지경 가무악이 늘 풍요롭다. 부패권신들의 나라 고려를 대신하여 새 세상을 창업한 이성계, 왜군으로부터 목숨 걸고 실록(實錄)을 지켜낸 안의와 손홍록 등 옛 선비들의 큰 꿈이 넘실대던 고장이다. 그뿐이랴, 오목대 이목대 한벽루 경기전 등 관련 유적지들도 넉넉하다. 여기에 대동 세상을 선도하는 풍채를 더욱 당당히 갖춘다면 전주에 새로운 문화 콘텐츠 ‘풍류도’가 세워질 수도 있으리라 본다.

 필자는 전주 풍류도의 일례를 전주 천양정에서의 향사례(鄕射禮)를 놓고 그리고 싶다. 궁사가 활시위 당겨 살을 날리고 나서 과녁 적중하면 붉은 기가 오를 것이다. 이어서 낭랑한 풍악이 흐르면 흐뭇해진 그 궁사 풍악에 몸 맡긴 채 속세 잊은 신선 되어 아름다운 춤 추리라. 혹여 쏜 살이 빗나가면 어떠랴. 벌주 마시고 동료 신선(궁사)들과 함께 껄껄껄 웃으면 될 것이니, 이 어찌 천상의 풍류가 아니겠는가?

 /= 최정철 서울시 한양도성문화제 총감독(『성공을 Design하는 축제실전전략』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