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연대방식, 산업계도 배워야
여성의 연대방식, 산업계도 배워야
  • 윤석
  • 승인 2018.05.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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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이 한국 내 진보 어젠다를 장악하게 된 건 여성들의 격렬한 연대 덕분이다. 성 억압과 관련해 여성들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동시다발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서 말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는 이제 틀린 말이다. 전국 방방 곳곳 온오프라인에서, 여성들은 비장한 얼굴로 결사대를 조직한다.

 성과도 놀랍다. 한 여성 커뮤니티는 16년 동안 ‘불법촬영범죄(몰카)’의 온상지가 됐던 음란사이트 ‘소라넷’을 폐쇄시켰다. 집단성과 과격함으로 여론의 관심을 일으켰다. 다음엔 동시다발적 국민청원으로 입법기관을 움직였다. 거칠지만 빨랐다. 심지어 페이스북 코리아가 편파적 기준으로 자신들의 콘텐츠를 삭제했다며 소송을 걸기도 했다. 모금한 소송비용이 일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미투운동’은 어떤가. 과거 여성의 성폭력 폭로는 ‘꽃뱀론’으로 흐지부지되곤 했다. 이제는 한 명이 폭로하면 다른 피해 여성들이 가해자에 대해 릴레이 폭로를 한다. 한국남성들은 현재 노이로제 수준으로 성희롱을 조심한다. 명쾌한 목표달성이다.

 물론 일부 여성 커뮤니티의 도에 넘는 언행과 행동은, 분명히 누군가를 상처주고 불편하게 만든다. 페미니즘이 하나의 올바른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애정어린 조언마저, 자신들의 말에 반기를 든다며 배척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보여준 ‘연대’라는 방식의 효율성만큼은 놀라운 수준이다. 부조리에 대항하는 방법론으로서 말이다. 사실 여성 문제 외에도 부조리한 일들이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가. 일례로 건설업계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3개월 전 한국에서 미투운동이 한창인 무렵, ‘조물주 위 건축주…’라는 제목의 뉴스가 건설인들 사이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기 돈으로 건물 지으려는 ‘건축주’가 일감이 부족한 중소 건설사들을 상대로 온갖 갑질을 한다는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공사비 후려치기는 기본이다. 건축주 친척들을 감리로 들여 공사내용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한다. 심지어 시공사에 설계대로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보도내용을 보고 격하게 공감하는 건설사들이 많았다. 민간공사뿐만이 아니다. 공공공사도 발주처의 공사비 저가 책정, 무리한 공기산정, 간접비 누락 등의 문제로 오래전부터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대기업 건설사의 공동수급 지역사에 대한 갑질은 또 어떤가.

 중소건설사들은 결국 침묵했다. 미투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다. 건설공사 발주처와 건축주의 갑질은 페미니즘만큼 오래된 이슈였다. 해당 보도가 중소 건설사들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봄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지역 중소 건설사는 갑질을 꾹 참고, 적자공사라도 수주하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제 살을 깎아서라도 일단 실적을 채워야 사업유지가 되기 때문이다. 치열한 수주경쟁 속에서 내린 ‘합리적’ 결정이다. 저항하지 않는 을에 대한 갑질은 더욱 심해지고, 건설산업 생태계는 점점 나빠진다. 악순환이다. 비단 건설업계에서만 벌어지는 문제가 아닐 테다.

 개별적 존재가 품는 성공에 대한 열망은, 그들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해결에 대한 희망보다 늘 앞선다. 사회변혁은 빨라야 십수 년이다. 개인이 이익을 얻는 시간은 훨씬 짧다. 구조문제에 투신한 개인의 삶은 피폐해진다.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구조문제를 바꾸는 방법은 단, 하나다. ‘격렬히, 동시다발적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이달 말 ‘전국 건설인 대국민호소대회’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다. 적자공사에 대한 국회와 정부차원의 해결책을 촉구하는 자리다. 이제 시작이다. 이날 모인 건설인들이 서로 끈끈하게 연대하고, 그 끈끈함을 계속 유지할 일이다. 그러면 어떤 부조리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윤 석<삼부종합건설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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