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문학을 배울 자격이 있다
누구나 인문학을 배울 자격이 있다
  • 조석중
  • 승인 2018.05.23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인문학은 자유다

 인문학은 무엇일까?

 겉으로만 보면 인문학은 어느 학문보다 대중들의 인기를 끄는 분야가 되고 있다. 시민강좌, 기업체 연수, 심지어는 종교 지도자의 연수과정, 청소년 교육 분야에서도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인문학 열풍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 얼 쇼리스는 <인문학은 자유다>(현암사)에서, 인문학이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미국의 언론인,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는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 재소자, 사회의 취약계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문학 전도사’이다.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인문학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고하기 위해, 여러분을 공격하는 무력에 단지 대응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토대입니다. 저는 인문학은 정치적이 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중범죄자 교도소에서 한 여성 재소자를 만났고, 그녀에게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인문학 교육의 여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후, 그는 삶의 방향을 전환했다.

 마약 중독자, 재소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과정인 ‘클레멘트코스’를 만들고,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 한국에도 2005년 클레멘트 코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인 ‘성프란시스대학’이 문을 열었다.

 우리의 인문학 열풍을 들여다보면 반성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인문학 강좌는 강의중심이다. 강의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다. 학습의 힘은 위대하다. 인류가 과거 몇 천 년을 통해서 축적한 철학, 역사, 문학, 예술을 강의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강의만 듣고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인문학적 지식의 소유가 오히려 사람을 더욱 오만하게 만들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논증하고 그것을 자기 말로 표현하고 글로 담아내도록 훈련시키기에는 강의로 충분하지 않다.

 이 책은 인문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성실한 질문지이자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대안을 모색한 치열한 실천의 기록이다.

 2013년 5월, 저자 얼 쇼리스는 영면에 들었다. 그의 유작이 된 이 책은 차이와 차별을 넘는 방법이 ‘정신적인 삶’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며, 인문학은 이제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을 뛰어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유도해주는 엄청난 에너지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준다.

 혼자서 듣는 것이 아닌, 함께 생각하고 말하며, 함께 그것이 말이 되고 근거가 있는지, 모두에게 설득될 수 있는지를 따져 보아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힘이 생기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의 의견,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의 생각에 의존해서 살 수 밖에 없다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혼의 깊이와 넓이에 놀라는 일 없이는, 그로부터 삶을 에워싼 현실과 타인을 돌아보는 일 없이는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없다.” 우리 주변의 일상을 평범함이 아닌, 신비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해준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문학은 OO다.’라는 문장에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함께 그것을 이루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글=조석중(독서경영 전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