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풍류도를 잊고 산다 <상>
우리는 풍류도를 잊고 산다 <상>
  • 최정철
  • 승인 2018.05.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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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 대저 이 풍류를 두고 그저 한갓 ‘노는 행위’라 한다. 그도 맞긴 맞으나 실은 엄청난 뜻이 이 풍류라는 말에 담겨있음을 우리는 자주 잊곤 한다.

 고대 한국의 가장 뛰어난 사상가로 9세기의 대 문장가 최치원은 자신의 사상적 기초서가 되는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우리 민족에게는 고유한 사상이 있는데 그것은 현묘한 도로서 ‘풍류(風流)’라 한다. ······ 풍류는 삼교(三敎)를 포섭한다. 풍류 속에 삼교가 구비되어 있고 삼교의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이 하나의 풍류 속에서 만난다.”

 최치원은 현묘한 도를 풍(風)이라 정의했다. 온 누리를 돌아다니는 존재로서 지혜와 상생을 의미하는 바람. 최치원이 현묘한 도를 풍이라 정의한 것, 현묘하다. 최치원이 말한 풍류의 핵심은 무엇일까? 풍류 속에서 삼교의 요체가 만나 하나 되기인 것이고 그것은 바로 ‘숭고한 정신으로 대동(大同)하는 것’이다. ‘대동’은 곧 상생이니 같은 민족 구성원 혹은 공동체가 무탈 행복하게 번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숭고한 정신’은 유교의 핵심일 인(仁)으로 볼 수 있다. 인은 옳고 그름을 반드시 따져 옳음을 따른다. 인으로 다듬어진 사람은 옳음을 위해 목숨을 초개로 여긴다. 인은 이타(利他)를 앞세운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 위한다. 너와 나가 대동으로 행복을 누리고 대동으로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고자 한다. 옳음을 가리고 이타를 추구하는 데에 목숨을 초개로 여기는 이 인을 대체하는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다. 바로 선비 정신이다.

 선비 정신을 말하기 전에 우선 선비라는 실체를 살펴보자. 사전에 이르기를, ‘예전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으로 선비의 뜻을 풀어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선비를 두고 모름지기 글께나 읽는다 하는 지식인의 지향상으로 여겼다. 그런 선비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간혹 오해하는 바가 몇 있다. 첫째, 선비라는 명칭은 한자어 표기가 아니다. 순 우리말이다. 그 어원 ‘션’이 용비어천가에 보이고 이것이 션?>선배 >선비(20세기) 등으로 음운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선비를 일컬어 유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공맹 교리를 따르던 조선시대 지식인으로 국한하는데, 물론 조선시대의 선비는 주로 유학을 공부했겠지만, 그 이전 시대인 고려와 삼국시대의 선비는 유학 외에도 도학(선학), 불학 등도 섭렵하였으니 선비는 유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든 해당 지식을 갖춘 지식인으로 인식해야 한다. 셋째, 선비와 사대부(士大夫)를 동일 시 하거나 혼동한다. 옛 지나(支那, China) 땅에서 생겨난 사대부는 벼슬아치를 일컫기에 우리의 선비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다. 한반도에서는 고려 후반기 즈음에서야 사대부가 등장하였고 이들이 훗날 유교의 나라 조선을 건국한 주체가 된다.

 /=최정철 서울시 한양도성문화제 총감독(‘성공을 Design하는 축제실전전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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