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가는 존엄
잃어가는 존엄
  • 박종완
  • 승인 2018.05.14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각종 행사를 챙기다 보면 없는 살림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누구나 부담일 수밖에 없다.

 얇은 지갑사정을 고려해 올해는 눈 딱 감고 넘어가야지 마음먹어 보지만 나름의 관계와 인간적인 도리를 생각하면 그냥 넘기기란 쉽지 않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각박해지고 핵가족화되면서 요즘엔 갈수록 예전의 대가족제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형제자매 간의 각별했던 정과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개인주의가 성행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형제들 간에도 자주 다투게 되고 급기야 왕래가 단절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 최근 5년간 존속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며, 가면 갈수록 부모와 어른에 대한 효와 공경심이 없어지고서 어른들의 존엄도 사라져가는 현실에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요즘 형제들 간 불화의 원인은 대부분 부모님을 봉양하는 문제, 재산분배 그리고 제사를 모시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더욱이 부모가 치매라도 있는 경우 부모를 모시는 일로 형제간의 불화가 심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증 치매환자를 모시기 위해서는 만만찮은 비용이 소요되고 가족 중 한 사람은 모든 일을 포기하고 24시간 대기상태로 환자를 돌봐야 하는데, 온전치 않은 정신상태에서 내뱉는 폭언이나 욕설로 마음은 마음대로 상하고 예기치 못한 돌발행동이나 난감한 상황연출로 말 그대로 치매와의 전쟁이 연속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가족의 힘만으로 치매환자를 감당할 수는 탓에 치매전문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경우가 많으나 이 역시 대부분은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팔순이 넘은 필자의 어머님도 치매로 24시간 돌본 서비스를 받으시며 생활하고 계신다. 그만그만하셔야 할 텐데 악화하실까 걱정이 앞선다. 자존심 강하시고 그 많은 제사며 자식들 생일, 집안 대소사를 메모도 없이 기억해 내시던 총기 밝은 분이셨는데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늙고 병들어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으로서 저미는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12분마다 1명씩 치매환자가 발생하고 평균 80세 이상 노인 4명중 1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치매진단, 예방, 돌봄, 요양 등 치매관련 산업의 급팽창으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고, 노인유치원이라는 곳까지 생긴 것을 보면 그만큼 치매인구가 넘쳐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이 인간에게 지능을 줬다면 악마는 인간에게 치매를 줬다는 말처럼 요즘 대다수의 노인 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이 암보다도 치매라고들 한다.

 인생황혼의 모퉁이에서 누구에게나 불현듯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인 치매로 환자와 그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엄청난 경제적 정서적 부담을, 사회와 국가가 지역사회 인프라와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나눠지겠다는 ‘치매국가책임제’의 추진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 정부가 정말 잘한 복지정책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66세 이상을 대상으로 국민건강보험 검진으로 인지기능검사는 물론 검사주기도 기존 4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치매 의심 단계에서 MRI 검사비용의 30~60% 한도 내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치매를 막을 수는 없지만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으로 치매를 사전에 예방하고, 치매증상이 보일 경우 신속하고 적극적인 치료와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이 최선의 치료라고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처럼 치매나 중풍을 앓는 부모를 모시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어려움이 수반되지만, 그럼에도 우리네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것이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 아닐까 싶다.

 지역사회와 국가차원에서도 고령화 사회에 걸 맞는 정책으로 어른들의 잃어만 가는 존엄을 지켜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박종완<계성 이지움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