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하기 이전에 인간이 되라
예술을 하기 이전에 인간이 되라
  • 이창선
  • 승인 2018.05.14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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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금소리에 매료된 소년은 대학에 들어가며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인간이 되어라”였다. 프로연주자가 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듣는 말이고 내가 활동하는 장르에서는 십계명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나는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20년 넘게 이 장르에서 생활해보니 이것은 우리의 생각을 가두는 프레임이라고 생각된다. 국악계에는 착한 사람이 많고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 착함의 내면에는 미움받지 않고 갈등을 피하는 것이 몸에 배서 부당함에도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어느 연주자가 선생님의 친구인 동료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맞고 난 후에 자신이 사과했다고 한다. 40이 넘은 연주자는 동료에게 폭행을 당했다. 폭행한 사람과 불편해지기 싫어서 그는 맞고 나서 조용히 집으로 왔다. 어느 학생은 선생이 중고 악기를 새 악기로 속여 팔았다. 학생은 자신이 새 악기가 아님을 아는 것을 선생이 모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난 이런 일들을 이해하기 어렵고 특히 피해자의 대응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폭행을 당해도 참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악계에서 이런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프레임 안에 갇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이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았고 이제는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런 환경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맞는 말이고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를 위해서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이 프레임은 힘을 가진 갑은 참 편리하고 좋은 것이지만 약자인 을에게는 참 가혹하다. “좋은 게 좋은 거야” 이 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는 일방에게만 맞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다. 갑이 을에게 씌우는 올가미 즉 프레임이다. 을이 착하게 사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은 갑에게 순응하는 것이다. 노비는 주인을 해치면 안되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도 모르는 것은 짐승이다. 착해야 하는 이유로 국악계에서는 “아니요” “제 몫을 주세요” “같이 먹고 살아요”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착하다는 것은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난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배운 선생님들께서는 “너의 생각을 말하고 너의 음악을 해라. 너를 표현하는 것이 연주자이다”하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말하고 산다. 간혹 따돌림을 받기도 하지만 이득이 될 때가 더 많다.

 우리는 어떤 소수의 갑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이창선(대금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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