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사회, 당신의 “분노”는 안녕하신가요?
분노사회, 당신의 “분노”는 안녕하신가요?
  • 김형준
  • 승인 2018.05.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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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언론에 분노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보도되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유명한 ‘땅콩회항’과 ‘물컵 갑질’의 자매를 지나 갑질의 끝판왕 그녀들의 어머니까지 대한항공 경영주일가에 대한 뉴스뿐만 아니라, 며칠 전 김제에서는 편의점 앞에서 경적소리를 울리는 운전자에게 항의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목검으로 때려 결국 사망하게 한 사건도 있었다. 최근 이러한 분노범죄의 예는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갑질처럼 권력관계나 갑을관계에서 나타나는 경우부터 김제의 예처럼 일면식도 없는 대상에 대한 무차별 공격까지 분노의 문제는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분노는 말과 행동이 돌발적으로 격렬하게 표현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가슴 속에 화가 과도하게 쌓여 있으면 이것이 잠재되어 있다가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이 생기면 화가 폭발하게 된다.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노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이런 분노를 느낀다고 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방식의 문제인데 병적으로 분노가 표출될 때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분노조절장애’라고 부른다. 흔히 말하는 ‘화병’은 화를 참고 과도하게 억압하면서 생기는 증상을 말하는데 과거 우리나라에는 지나친 분노 억압으로 인한 ‘화병’이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지나친 분노 폭발로 인해 ‘분노조절장애’가 더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분노조절장애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대체로 유전적인 원인과 환경적인 원인에 의한 복합적 결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분노조절장애’가 모두 유전과 같은 생물학적인 원인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면 과거와 달리 최근 이런 문제가 늘어나는 것을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세계정신의학계에 ‘화병’이라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정신질환이 한국 문화권에 존재한다고 보고된 바가 있다. 화병은 분노와 같은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하여 밖으로 표출하지 못할 때 그 분노가 나를 향해 자신을 괴롭혀 모호한 신체증상이 발생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과거 식민의 아픈 역사와 전쟁, 그리고 혹독한 가난을 경험했던 우리 조부모, 부모 세대에게는 마음이 다치고 우울한 것 같은 아픈 마음(?) 정도는 참고 억누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것이 ‘한’이 되어 화병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은 세대에게서 ‘화병’보다는 ‘분노조절장애’라는 오히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밖으로 폭발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것일까? IMF 이후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는 장기간의 경제적 불황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실업, 파산, 사회안정망의 부재 등 뉴스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런 단어들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장기간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많은 사람들 특히 20~30대의 젊은 세대에게 이제는 습관화된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탈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의 사회적 욕구들이 점점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빼앗아가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좌절된 욕구는 분노를 만들게 되고, 이것이 공격성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본다. 내면에 만들어진 공격성은 그 강력한 에너지 때문에 힘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는 데 때론 안으로 향하기도 하고 밖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격성이 내면 밖 다른 사람에게 투사될 때는 폭력을 만들게 되고, 내면의 자신을 향하게 되면 바로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15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를 보이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최근 분노조절장애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좌절된 사회적 욕구가 만든 공격성이라는 하나의 원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분노사회가 만들어지는 중요한 원인으로 핵가족을 넘어 일인 가구, 2인 가구가 일상화된 것처럼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족은 성숙한 대인관계를 배우는 학교이자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는 훈련장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바쁜 부모와 학업으로 더 바쁜 자녀들, 낮은 출산율이 보여주듯 함께 어울리고 감정을 나눌 형제·자매의 부재 등 점점 우리의 가족은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인격의 성숙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 내에서도 크고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하고 분노에 휩싸여 결국 ‘분노조절장애’로 이어지는 것이다.

 요즘 2·30대 젊은이들을 ‘3포’, ‘5포’를 넘어 ‘7포’ 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취업, 결혼, 출산, 주택을 넘어 심지어는 취미, 희망,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세대를 말한다는 뜻인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이 기본적인 욕구마저 포기를 강요당하는 세대를 일컫는 가슴 아픈 말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사회적 욕구가 좌절되고 이것이 사소한 문제에도 모멸감과 열등감을 일으켜 공격성이 분노로 나타나는 것이 최근 ‘분노조절장애’가 늘어나는 원인이라 생각된다. 이것이 해결되려면 개인의 사회적 욕구가 실현될 수 있는 많은 일자리와 튼튼한 사회안전망도 중요한 일이며, 가족의 복원이라는 정신적 가치의 회복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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