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이타주의자와 기부문화
효율적 이타주의자와 기부문화
  • 김판용
  • 승인 2018.05.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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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조나 기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자체가 선진국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개발국가에 원조를 하고, 사회적 양자에게 기부를 하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도 딜레마는 있다. 다음 질문을 보자.

  4만 달러로 1명을 도울 것인가, 2000명을 구할 것인가? 미국의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안내견 한 마리가 훈련비용 포함 4만 달러이다. 동시에 개발도상국의 트라코마 질환을 가진 실명 위기의 환자를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은 20달러이다. 그러니까 미국의 시각장애인에게 한 마리의 안내견을 대주는 비용으로 실제 실명위기에 처한 개발도상국의 2000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더 많은 기부를 위해 철학교수가 나은가, 대기업의 CEO가 나은가? 철학교수가 되어 원조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는 수십, 수백 명의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을까? 부자들만이 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자들이 구원할 수 있는 힘이 훨씬 크다. 앞선 두 가지 질문에서 기부자들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기부가 옳은 것인가? 순간의 연민이나 감정에 휩쓸려 일회적이고 자기만족적인 기부를 한, 그저 착한 사람은 아니었던가? 기부를 위한 기부,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기부를 했는가에 대해 묻게 될 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인 철학자 피터 싱어는 ‘하나보다는 여럿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더 많이 주기 위해서 번다.’라고 했다. 수만 개의 자선 단체가 판을 치고, 기부를 가장한 사기가 난무하고, 이익을 챙기기에 시급한 단체들이 넘쳐나는 시점에서 어느 단체에 어떻게 기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감성과 따뜻한 마음만이 우리를 쥐고 흔드는 주체가 된다면 우리의 기부는 정말 도움의 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 따뜻한 마음과 냉정한 머리를 가진 효율적 이타주의적 자세가 필요한 이유이다.

 익산고 3년 김예지
 

 <강평>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기부문화에 대한 의견을 밝힌 글이다. 기부를 하기만 하면, 그 자체가 선(善)이라는 인식에서 한 차원 높게 보고 있다. 감성적인 자세보다는 효율적인 태도로 기부를 하라는 것이다. 상당히 깊은 안목을 가진 학생이다. 논술은 명확하게 주장을 펴고, 논거가 풍부하면서도 문장은 간결해야 한다. 너무 장황하게 상황을 이야기하면 설명문이 되기 때문이다.

 김 판 용(시인·금구초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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