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들의 ‘굿 비즈니스’…이학준×탁영환×이세영
그 남자들의 ‘굿 비즈니스’…이학준×탁영환×이세영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8.05.0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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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큐멘터리 \'굿 비즈니스\'의 제작진을 전주영화의거리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프로듀서 탁영환, 감독 이학진, 프로듀서 이세영씨. (김미진 기자)
 전주국제영화제가 지원하고 있는 영화제작 프로젝트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를 통해 올해 또 한 번 주목할만한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탈북 인권 운동의 이면을 생생하게 취재로 포착한 ‘굿 비즈니스’다. 전주영화제가 제작비의 일부를 대고,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획자가 프로듀서로 참여해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작품. 탈북자들의 모습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기 위해 국경을 넘어다니기를 밥먹듯이 한 이학준 감독과 그의 위험천만한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졸여야 했던 탁영환, 이세영 프로듀서를 만나 제작 뒷 이야기를 들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아직도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을 판이었다. 지난 6년의 시간은 이학준 감독을 옥죄어왔다. 목숨까지 위협받는 촬영 일정에 스텝들이 바뀌기도 여러 번, 수많은 파일들은 편집도 되지 못한채로 남겨져 있었고, 빚은 쌓여만 갔다. 그 때,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이 전주국제영화제다. 덕분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됐다.

 저널리스트로서 탈북자 취재만 12년째 해오고 있는 이학준 감독은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시리즈를 연출해 국내외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하고, 미국 에미상에 세 차례 노미네이트됐던 유명인사다. 밀입국만 16번이나 감행하고, 밀항선도 2번이나 타면서까지 이렇게 북한 인권문제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감독은 “북한 인권, 탈북자의 인권 문제는 미국이나 한국의 권력자들에게 손에 꼭 쥐고 싶은 뜨거운 감자는 아니다”며 “사람이 100만 원이 안되는 값에 팔려나가고, 한국보다는 국외에서 유명한 김성은 목사에 대한 평가의 잣대도 다양하지만 적어도 저런 사람이 있어서, 사람은 구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경이라는 것이 그렇다. 결국은 사람이 그어 놓은 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인간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순수해지는데, 고도의 긴장감을 요하는 국경에서는 아무런 잡생각이 나지 않게돼 그게 큰 매력이다”고 덧붙였다.

지금이야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지만, 탈북자들의 틈에 파고들어 가장 가까이에서 위험한 순간을 담아내는 일이 어찌 무섭지 않을까? 카메라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지 않은가?

 이번 작품의 경우, 편집본만 5개가 있다. 처음 완성한 것은 60분 짜리였는데,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다 들어가지 못했다. 3시간짜리 버전도 있었으나, 너무 한국적인 시선에서 옹호거나 비판하는 모양새는 경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런닝타임을 100분 이하로 떨어뜨려야겠다는 것. 다시 뜯어 고쳐야만 했다. 그 때, 멕시코인 편집감독 헥터가 떠올랐다. 남북관계나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편집감독은 르와르의 느낌으로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 감독의 생각과도 일치했다. 영화를 다 보고난 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로 하여금 질문을 남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편집에만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늘어난 3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르와르 느낌을 영화 전반에 깔려다 보니, 음악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이 감독이 국경을 넘을 때마다 듣는 음악이 U2의 ‘With or without you’인데, 영화 속에서도 등장한다. 이 감독은 독일의 락밴드까지 수소문해 찾아내 연주를 맡겼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이 정도이니 탄탄한 작품이 빠질 수 밖에….

 사실, 영화가 완성되지 못하고 4년이 흘렀을 땐,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이 감독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독하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 완성이 될 수가 없다”면서 “결국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에 앉아서 보면서 절대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립 영화 작업이라는 것이 열악한 촬영 스케줄에 따라 업무 분장을 칼같이 나누는 일은 꿈같은 이야기다. 프로듀서인 탁 감독도 중국 안가에서의 촬영에 급파돼 카메라를 잡은 적이 있었다. 가족들이 걱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출장이라고 이야기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촬영 중이나 이동할 때 끊임없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턱밑까지 쫓아왔고, 감시를 받고 있다는 느낌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중국 공항에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촬영 장면이 든 SD카드를 혀 밑에 숨기기도 했다.

 탁영환 감독은 “탈북자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내 자신이 선한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의 인권을 옹호하는 도덕적인 사람도 아니지만, 이학준이라는 인간이 같이 해보자고 하니, 이학준이 바라보는 세계는 따뜻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참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나마 오래된 가족에 대한 빚을 갚을 수 있게돼 영광이다”고 덧붙였다.

 사실, 탁 감독의 집안 어른 중에 전북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시대의 목격자가 있다. 바로, 전주경찰서 후생극장인 백도극장의 지배인을 맡으면서 극장경영은 물론 영화 기획과 제작, 심지어 변사로까지 활동했던 탁광(1923~1999, 본명 탁형연) 선생이다. ‘선화공주’와 ‘피아골’ 등 수 편의 영화를 제작해냈던 전북 영화판 역사의 중심에는 있었던 큰 어른이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번 ‘굿 비즈니스’의 전주행은 필연적인 일이었는지 모른다. 전주에서 다시 한 번 모인 세 남자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선택과 지원 덕분에 독립영화가 숨통을 틔울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세영 프로듀서는 “마지막에 전주국제영화제의 지원이 성사되지 못했다면, 이학준 감독이 혹시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면서 “영화 표현의 해방구로 독립영화 감독들을 지지하고, 또 폐막식 때는 지프지가 모두가 레드카펫을 밟도록 만드는 전주의 모습을 볼 때면, 가장 필드에서 일하고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최고의 영화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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