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피보다 진한 가족애는 현해탄 넘어서도
[리뷰] 피보다 진한 가족애는 현해탄 넘어서도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8.05.0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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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
근현대사 속 우리가 잊고 지내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난 죄로 전쟁의 노동력으로 강제 동원돼 일본에 건너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2세, 3세들. 꼭 어느 시기나 기념일만 되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찾는 재일동포와 관련된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택한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은 바로 그들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였다.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연극처럼 영화는 물 흐르듯이 전개됐다.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전후, 오사카 박람회가 열리던 시대에 공항 근처 마을에서 곱창구이집을 꾸려나가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야키니쿠 드래곤'이라는 이름의 곱창집의 주인장은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은 용길. 그의 이름의 용자를 붙여 드래곤이라 이름 붙인 좁디 좁은 곱창집에는 아내 영순과 세 명의 딸, 한 명의 아들, 그리고 몇 명의 단골손님으로 매일 같이 북적인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영화 속 캐릭터들을 통해 재일동포 2세대들의 다양한 시각과 고민들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큰딸 시즈카는 시종일관 부드러운 모습으로 가족들을 보듬고, 결국은 조선인일 뿐이라며 모난 돌 같이 굴던 둘째딸 리키는 사랑 앞에서는 매우 불같은 용기를 보여준다. 가수가 꿈인 셋째딸 미키는 티없이 맑은 모습이지만, 클럽에서 일하는 유부남과 위태로운 사랑에 빠져 가족들을 걱정시킨다.

그런데, 이들 가족에게는 공통의 트라우마가 있다. 바로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난 죄. 뼈 속까지 '김치'일 뿐이라고 우롱 당하며, 갖은 핍박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 용길의 욕심으로 일본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 토키오는 학교 동급생으로부터 철저한 이지메를 당한다.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하는 토키오의 모습을 보며 가슴 속으로 "제발, 힘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전쟁과 제주도 학살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났으나, 일본에서의 삶은 더욱 녹록치 않았음을. 공사판 막노동과 넝마주이, 돼지치기 같은 온갖 험한 일은 당연히 이들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허드렛일을 하며 몸이 고된 것보다 더욱 힘든일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 였다.

그 끔찍한 전쟁은 한 인간의 삶을, 그리고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들 가족은 지척에 비행장이 있는데도, 매일 같이 이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들이 탈 수 있는 비행기는 정작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여느 가족이 그러하듯 이들 가족 또한 자연스럽게 이별을 준비한다.

어쩌면 장성한 딸들이 집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지만, 이 가족들은 좀 특별한 이별을 택한다. 첫째인 시즈카는 북으로, 둘째인 리키는 남으로, 그리고 셋째인 미키는 일본에 남기로 한 것이다.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그리고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관객들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봄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흩날리고 있음에도.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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