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를 감각들의 세계에서 가져온 기념품들처럼
회화를 감각들의 세계에서 가져온 기념품들처럼
  • 채영
  • 승인 2018.05.0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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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갤러리 기체(KICHE)에서 진행 중인 김하나 작가의 개인전 (4.10~5.19)에는 뚜렷하게 형상을 짐작하기 어려운 추상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여전히 현대미술은 많은 관객에게 어려운 대상이다. 작품의 개념과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험적인 예술작품들뿐 아니라 전시를 통해 자주 보는 추상화마저도 감상과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많은 것들이 요구된다. 용기를 내어 전시 관계자에게 물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답을 듣거나 미술은 정답이 없으니 이해보다는 감상할 것을 권유받기도 한다. 감상을 우선하라는 것은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덮어 놓고 감상만 하는 것은 작품 속 형태와 색채가 만들어낸 시각적 경험 너머에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놓치는 것만 같다.

 그 너머에 있는 세계를 우리는 보통 작가의 ‘예술 세계’나 ‘작업 세계’라고 부른다. 난해한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환상은 어쩌면 이 ‘세계’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예술가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심오하고 고유한, 이질적인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게 되면 예술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멀어진다. 회화는 특별한 예술세계로부터 오기보다는 우리 삶으로부터 선택된 순간들의 감각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서울의 갤러리 기체(KICHE)에서 진행 중인 김하나 작가의 개인전 (4.10~5.19)에는 뚜렷하게 형상을 짐작하기 어려운 추상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다. 물감을 흐르게 하거나 여러 번 중첩시키기도 하고 물감으로 덮인 화면 위를 다시 닦아내거나 긁기도 한다. 회화는 다시 그 캔버스 틀을 자르거나 아예 없애는 과정을 통해 가변적 형태로 제시된다. 화면은 부유하듯 흘러내리듯 그리고 진동하는 듯 보이다가도 오묘한 질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전시장 내부로 들어오는 빛의 양과 내부 조명에 따라 표면의 색은 달라 보이기도 동시에 빛을 반사시키거나 빨아들인다. 매끄럽게 보이는 표면 위로 긁고 닦아낸 흔적들이 작가가 재현하려는 감각들과 관객을 매개한다.

 이 감각들의 세계는 불확정적이다. 그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의 세계는 작품의 모티브가 된 빙하, 포도, 천장, 실크이불 등과 같은 여러 대상과 공간으로부터 받은 시각적 경험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애초에 화면에 정확하게 고정될 수도 없으며 그저 전시 제목에서 보듯 ‘기념품’처럼 감각의 기억들을 환기시켜줄 뿐이다. 관객은 타인의 기념품들을 볼 때처럼 회화를 통해 작가와 유사한 어떤 감각들을 공유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감각들을 완전히 낯설어 할 수도 있다.

 이 익숙하거나 낯선 감각들은 단순히 그림 표면의 감상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기념품과 같은 회화가 반영하는 것은 예술가 내면에 있는 어떤 특별한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를 만든 대상 혹은 공간의 감각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처럼 작품의 감상과 이해는 예술세계를 찾아내려는 시도보다는 작품을 통해 그 감각들에 다가서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채영(공간시은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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