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결핍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 박영준
  • 승인 2018.04.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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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프랭크 딕시의 고백'의 한 장면, 낭독자들의 뒤쪽으로 프랭크 딕시의 작품 고백이 아련하다.

 하얀 드레스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사랑에 빠진 마음을 들킨 듯 누구보다 수줍은 표정으로 남자의 대답을 기다린다. 창가에 앉아 있는 검은 옷을 차려입은 수수한 남자는 괴로운 듯 머리에 손을 얹고 고민한다. 남자에게는 어린 시절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그는 사랑이 무서웠다. 여인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면 어느 순간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변할까 두려워 말을 안 하고 지켜보기만 했던 남자. 하지만 여인의 사랑고백을 들은 이상 그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되었다. 과연 그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대답할 수 있을까?

전북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뮤지컬 프랭크 딕시의 고백은 이렇게 사랑에 대한 극적 효과를 극명하게 대비되는 그림 속 두 인물을 통해 조명한다. 김소라 작가의 의도가 그림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극 중 여자 주인공 정인은 시립미술관 큐레이터다. 어느 날 이 그림을 즐겨 찾아오는 정신과 의사인 남해를 사랑하게 되고 두 사람은 연인들의 천국 크로아티아 두보르닉으로 여행을 떠난다. 정인은 그곳에서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남해의 프로포즈를 기대하지만 두 사람 앞에 뜻하지 않는 일 들이 벌어지고 서로에 대한 오해는 점점 커지기만 한다.

 이 때 그곳에 나타난 한 남자. 사랑의 상처를 잊기 위해 크로아티아의 숨겨진 명소 ‘실연박물관’을 찾아온 실연남이다. 사랑했던 연인들의 아픈 추억이 담긴 물건을 맡기면 모든 기억이 지워지는 신비한 실연박물관에서 실연남은 사랑했던 연인의 모든 기억을 지우려 한다고 두 사람에게 말하는데…….

 결국 정인은 남해에게서 사랑의 고백을 듣지 못한 채 실연박물관으로 향한다.

 사실 남자 주인공 남해에게는 어린 시절 치유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의심으로 인해 어머니를 오해하고 미워했던 남해. 어느 날 보랏빛 얼굴로 옥상에 도망쳐 온 어머니는 싫다는 남해를 꼭 안아주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렇게 사랑한다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남해의 인생에 있어 평생의 결핍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어머니처럼 떠날까 두려워 남해는 정신과 의사지만 정작 자신의 상처는 치유하지 못해 괴로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인을 만난 후 자신의 결핍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가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는 남해. 과연 그는 모든 결핍을 극복하고 그녀에게 말 할 수 있을까?

▲ 프랭크 딕시 - 고백(1896)
 뮤지컬 낭독회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낭독의 형식으로 뮤지컬을 듣는 시간은 스토리에 집중하게 만들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라디오 극장과 같았다. 또한 피아노 한 대로 뮤지컬 14곡과 브릿지 음악을 구성한 김미경 작곡가와 김소라 작가의 환상의 호흡은 극의 완성도를 높여줬다. 특히 작년 창작 소리극에서 실험적인 무대를 보여줬던 극단 두루의 김소라 작가이자 연출은 이번 무대에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시간에는 멀티맨 송광일 배우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60분 동안 5인 역할을 다양하게 소화하는 것도 훌륭했지만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 냈다. 여주인공 정인 역의 최미소 배우도 매력적이었다. 수준 높은 발성으로 총 12곡의 뮤지컬 넘버들을 소화해 내는 열연은 빈 무대로 생략된 무대장치, 간소화된 조명, 등 낭독에서 오는 결핍을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전라북도에서 위탁받아 운영되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도 지역예술인들이 바라보는 결핍이 있었다. 그동안 지역예술단체와의 협업에 대한 아쉬움이 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기획된 작은 음악회 ‘낮달’은 결핍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여겨진다. 공연이 많은 저녁시간 외에 낮 시간대에도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한 시도와 뮤지컬 독회라는 실험적인 기회를 마련한 것은 지역민들과 소통하려는 의지 아닐까?

 부부, 연인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게 하는 완성도 높은 뮤지컬 독회 ‘프랭크딕시의 고백’을 시작으로 지역예술계와 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측의 더 많은 노력을 기대해본다.

 

  글 = 박영준 우진문화재단 제작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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