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훌륭한 판결일지라도 화해만 못하다
아무리 훌륭한 판결일지라도 화해만 못하다
  • 김양현
  • 승인 2018.04.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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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 추측이지만, 노동위원회가 제법 권력깨나 있어 보이는 기관으로 오해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준사법적 행정기구라는 법적성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는 노동위원회의 핵심기능 중 하나인 심판기능이 사법부의 재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잘못된 인식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동위원회는 그러한 사법적 권위나 사법기구와 같은 티를 빼고 좀 더 자유롭게, 그리고 원칙과 기준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창조적인 노동분쟁해결을 도모하는 곳이다. 그 대표적 제도가 바로 화해다.

  화해는 말 그대로 분쟁당사자의 합의로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화해는 사건처리의 장기화를 막고 분쟁을 조기에 종식시켜 당사자의 시간·경제적 비용을 덜 수 있다. 따라서 화해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권장되고 판정보다 우선시 된다. 분쟁사건은 제3자의 판단(조정)에 따르게 되면,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되어 패자(혹은 덜 이익을 보는 쪽)가 쉽사리 수용하기 어려우므로 애초부터 완결성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사정은 전국 11개 지방노동위원회 중 우리 전북이 유독 심한 것 같다. 지난해 초심유지율(재심에서 번복되지 아니함)은 거의 95%대를 유지한 반면, 판정수용률(지노위 초심판정을 수용하고 재심절차 등을 진행하지 아니함)은 40%미만이고, 화해율은 25%대 수준으로 전국 평균치 30%대에 비해 그 비율이 눈에 띄게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분쟁이 길어지고 그 만큼 앙금도 남게 된다.

  결국 분쟁당사자의 기대나 요구수준에 맞는 최고의 해결책은 그 누구보다도 당사자 자신들이 만들어 낼 수 있다. 화해조건을 제3자가 보면 다소 불합리해 보이는데도 당사자들은 이에 동의하고 합의하는 것을 보면, 제3자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당사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고려하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제3자인 노동위원들이 복잡 미묘한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따지고 그 이익을 잰다는 것은 애초부터 썩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한 것 같다.

  화해는 우리 노동위원회의 조사과정 또는 심문회의 때 조사관이나 위원들의 화해 권유를 당사자가 수용할 경우 화해조서를 작성하고 서명으로 동의하여 성립된다. 적법한 화해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는 화해한 후 이를 번복하거나 불복할 수 없고, 화해조서의 내용대로 이행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일각에서는 진실규명도 없이 화해라는 방식으로 얼버무리게 되면 같은 사안이 반복될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화해회의론도 제기한다. 이들은 시비를 분명히 가려서 가해자에게 응징차원의 불이익을 주어야 다음부터 그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응징과 처벌은 노동위원회의 본질적 기능이 아니다. 다만, 진실을 먼저 요구하고 화해를 논하자는 의미에서는 수긍이 간다.

  그런 점에서 위원들은 비록 화해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를 공개적으로 짚지 아니하더라도 비공개 화해조정과정에서는 당사자에게 이런 점을 먼저 충분히 이해시키고 화해를 권고한다. 사실 이러한 과정이 없이는 화해성립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화해는 이 모든 것을 녹여 담은 큰 그릇이나 다름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아무리 훌륭한 판결일지라도 화해만 못하다.

 

김양현 전북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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