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김성호, 안옥봉 부부 “만감이 교차하네요”
실향민 김성호, 안옥봉 부부 “만감이 교차하네요”
  • 장정철 기자
  • 승인 2018.04.2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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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10시 완주군 정농마을 실향민 김성호 안옥봉 부부는 (황해도 출신) 12년 만에 진행되는 남북정상회담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 부부는 남북정산회담이 잘되어 고향에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히고 있다. 신상기 기자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는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네요.”

15~16살 되던 시절 큰 형 손을 잡고 북에서 내려온 황해도 송화군 출신의 실향민 김성호(84)씨.

김 씨는 “그동안 고향땅이 생각나고 그리워도 가지 못해 너무 안타까웠는데 이처럼 남북한 두 정상의 평화분위기를 TV에서 내 눈으로 직접보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당시에 부모님과 같이 내려오지 못한 것에 대한 여한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완주군 이서면 정농마을 실향민 정착농원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김 씨는 어언 70여년 전 1.4 후퇴때 남으로 내려오던 당시를 회상하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어릴적 기억을 더듬던 김 할아버지는 당시 백령도 위쪽 근방의 초도섬에서 목선을 타고 군산항으로 피난을 왔다. 이후 군산에서 커다란 컨테이너 같은 곳에서 몇 달을 기거하다가 당시 유엔군 포드차량에 나눠타고 전주로 옮겨왔다.

현재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이 곳 정착지에서 황무지를 개간하고 천막을 치고, 흙담으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수십 여년을 살아온 산증인이다.

김 할아버지는 남쪽에서 역시 실향민 출신의 부인 안옥봉씨를 만나 22살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27일 오전 완주군 이서면 정농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김성호, 안옥봉씨는 TV 생중계를 지켜보며

 연신 환한 웃음과 함께 앞으로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소망했다.

안옥봉 할머니 역시 평소 오전시간대는 마을 인근 밭에서 농사를 짓느라 바쁘지만 이날은 역사적인 현장을 보기위해 농사일을 팽개치고 한걸음에 이 곳으로 달려왔다.

이들 부부는 “이미 고향을 떠나온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향집 주소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기억이 떠오른다”며 “물론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대한 기대감 한편에 걱정의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 이 모습을 보니 너무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또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북한을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오고, 그 이전에 편지라도 우선 왕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남으로 내려온 게 어린 나이였지만 황무지에 정착해 논과 밭을 일구고 하루하루 끼니를 어렵게 연명하던 시절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며 “북한 주민들도 앞으로 최소한의 끼니 걱정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남북 통일에 대한 심경을 묻자 그는, “남북 통일이 되면 당연히 좋겠지만 최소한 10년 이상은 가야 될 것 같다”며 “당장은 힘들 것 같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그는 완주군 이서 정착농원에 당시의 사진이나 역사를 알 수 있는 물건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김 할아버지는 “일년에 한번 씩 지금도 김제 용지농원의 망향탑을 찾아 망향제를 드리곤 하는데 그곳에는 당시 피난시절의 사진은 물론 1세대 사진들도 보관하고 있어 부러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이서 정농마을에도 이 같은 역사적인 물건과 사진들을 보관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고 회고했다.

한편 완주군 이서면 정농마을은 80대 실향민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이승만 정권당시 국가시책 등으로 이서정착농원으로 추진됐다.

부모를 따라 어릴적 배를 타고 남한 땅을 밟은 실향민 1.5세대들로, 마을 전체 200여세대 가운데 80%가 실향민 가구다. 현재 약 25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50년대 당시 옹진군, 장산곳, 황해도 지역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유독 많다.

이날 만난 또 다른 실향민들 역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기쁨과 환희의 웃음과 눈물을.보였다.

이들은 지난 1.4후퇴부터 1953년 사이 황해도 인근 부두나 항구에서 목선이 등을 타고 군산항으로 들어와 부산과 전주, 서울 등에 흩어져 살다 완주군 이서 정착농원에 하나 둘 정착해 살고 있다.

장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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