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전의 미술관 관람 코드는 지금도 유효한가?
200년전의 미술관 관람 코드는 지금도 유효한가?
  • 김은영
  • 승인 2018.04.2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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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엄 대중의 태동

 서구에는 박물관 미술관 아트센터 같은 문화예술기관을 여가로서 즐겨 찾는 사람들을 가리켜 ‘Museum Goers’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박물관 대중, 혹은 문화소비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오늘날의 이 개념이 형성되어온 시간은 200년 남짓하다. 박물관 대중이라는 즉, 예술 소비행위를 통해 규정되는 관중이라는 개념의 역사적 출현은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드러난다.

 상업 자본주의의 번영에 힘입어 런던과 파리, 로마는 극장, 음악, 미술이 있는 대도시에 모여드는 신사들의 여가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그림이나 골동품을 누구나 살 수 있었고 전시물은 더 이상 교회제단이나 궁중에 국한되지 않아서 귀족들의 특별한 집안 행사 때에는 교회 바깥벽에 내다 걸거나 연중 몇 날 동안은 궁전회랑 벽 밖에 내걸리기도 했다.

 귀족 수집가들이 미술품이나 자연물들에 분석과 관찰과 사유를 더해 이러한 사물들의 과학적 사실들과 학문적인 분류 체계를 밝혀내었던 그들의 진열장을 열어 비슷한 부류의 여행자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는데, 대중의 비행을 두려워해서 한정된 컬렉터를 제외하고는 일반 대중들의 접근은 금지되었다.

 귀족층의 힘 상징으로 정부를 규정하기 위해서 국가는 거대한 의식공간을 대중공원, 동식물원, 뮤지엄들로 만들어나갔는데 그 대표적 사건은 프랑스 혁명으로 루브르 박물관을 국유화하여 대중에 문을 연 것이다. 그러나 평등사상을 추구하면서도 구시대의 태도를 영속화해나가던 귀족계급 관장들의 정책 때문에 이 대규모의 박물관은 광범위한 관중을 끌어들이지 못하였다.

 

 관람자의 문화적 코드

 모든 이들이 뮤지엄 대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국제박람회 시대에 와서였다. 1851년 런던의 유리궁전 박람회를 필두로 이어진 비엔나 박람회, 필라델피아 박람회, 시카고 박람회 산업제조물의 전시는 물질적 풍요를 예언하며 방대한 군중을 끌어모았다.

  국제박람회에 밀집한 군중들은 그 자체로 박람회의 진열품이었다. 그들의 똑같은 행위와 정해진 의상과 세련된 매너들이 논자들의 화제중심에서 빠지지 않았다. 당시 산업혁명에 의한 대량제조는 풍부한 전시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능케 했으며 동시에 단조롭고 똑같은 의상들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구분없이 하나의 군중 속에 섞이도록 했다. 대량제작된 의복의 힘은 가히 놀라워서 농부의 잠벵이를 벗고 검정색 넓은 깃의 정장에 코트와 중절모로 갈아입기만 하면 도시 부르조아의 일원이 되어 단박에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외양의 기본을 확보하게 되었다.

 국제박람회란 기술적 진보를 진열한 것만큼이나 대중의 시민성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공공적 행동의 기준이 변하는 것이 전시공간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극장, 콘서트홀, 도서관 같은 문화적 기관을 관통하고 있었다. 박람회기획자들과 박물관 관장들은 극장이나 박물관에서의 행동지침을 채택했다. 즉 ‘전시장에 깔리운 침묵’이라는 태도였다.

 중산층의 관객들은 공공장소에서 전시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전시품에 대한 존중과 최상의 경의는 감정의 억제임을 배웠다. 전시는 이처럼 공공시민성의 교과서가 되었고 관람자가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는 말이나 행동양식을 피하면서 상대편의 인식에 부합하는 것을 배우는 장소였다.

 특히 프랑스 국가차원의 전시기획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미술잡지와 신문에 홍보를 통해 미술전시에 방대한 관중을 모았다. 공공장소에서 컬렉션을 감상하는 태도는 주로 비평가와 화상들에 의해 일간지의 칼럼 등으로 쓰여 계몽되곤 했다.

 

 21세기 미술관에서의 관람 코드

 오늘날에도 전시 공간에서 다른 관람자를 방해하지 않도록 함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시민성의 기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미술관 안에 깔리운 침묵은 더 이상 오늘날의 전시장 관람문화를 묘사할 수 있는 코드는 아니다. 전시장 안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도슨트 해설이 진행되고, 때로는 작가가 스스로 연출하는 퍼포먼스 작품에 관람자가 참여하는 행태들도 빈번해졌다. 심지어 전시장 바닥에 둘러앉아 전시테마의 조형적 표현을 탐구해보는 드로잉워크숍도 시도된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미술관 안과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큐레이터가 안내하는 전시해설을 동시간적으로 모바일로 감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한 전시장은 꽤 숨가쁘게 돌아가는 정중동(靜中動)의 공간이다.

 뿐만아니라 20세기 후반 이래로 박물관 전문가들은 전시장에서의 침묵과 관람행태에 깔린 욕구와 동기와 인식을 규명하고자 노력해오고 있다. 수십년간 축적된 ‘뮤지엄관람자연구’는 검정플록코트에 가려진 하나의 침묵 코드가 아닌 무지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루는 반응과 행태를 통해 관람자들이 누구인지를 깊고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김은영<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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