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의 ‘물벼락 갑질’
재벌 3세의 ‘물벼락 갑질’
  • 김광수
  • 승인 2018.04.2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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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재벌 3세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졌다는 소위 ‘물벼락 갑질’ 논란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재벌(chaebol)’이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올라 외국의 일반명사가 된 상황에서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생소하게 느꼈던 ‘갑질’이라는 단어는 이제 신조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투영하는 상징어가 됐다.

 계약서에서나 보던 용어였던 갑을(甲乙)은 이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가하는 부당행위의 대명사가 되었고, 갑질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일이 돼버렸다.

 특히, 우리나라 재벌들과 기득권층의 안하무인(眼下無人)적인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한항공을 비롯해 삼성, 한화, 미스터피자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대기업들이 갑질 논란을 일으켰고, 그때마다 전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갑질 이면에 숨겨진 우리나라 재벌의 근본적인 문제점에서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 시절, 일제가 남긴 적산기업을 헐값에 불하(拂下) 받으면서 탄생했다. 더욱이, 정경유착을 통한 각종 특혜와 독점 등을 발판으로 성장한 재벌들은 가족경영과 세습을 통해 한국만의 독특한 경영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재벌 1세인 창업주들은 큰 리스크와 맨땅에서 시작해 기업을 일군 경험이 있고, 2세는 부모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름대로 성장시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부를 누리기만 한 3세들은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특권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그릇된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갑질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과 국가 경제에 돌아온다.

 실례로 조 전무의 ‘물벼락 갑질’ 의혹이 처음 보도된 날부터 경찰이 조 전무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정식 수사에 착수한 4일 동안의 주식동향을 살펴보면 한진그룹 상장계열사 시가총액 3,000억 원 이상이 사라졌다. 이는 대한항공 지분을 11.6% 보유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손실과도 직결되었으며 결국, 국민들의 노후자금까지 피해를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 23일, 인공지능(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수집한 ‘갑질’ 관련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갑질에 대한 언급량은 2013년 2만 4,411건에 불과했으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이슈가 터지며 2014년에는 10만 8,820건으로 급증했다.

 이후에도 갑질 게시물 수는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81만 2,251건이 생산됐다. 이는 2013년과 비교하면 약 33배 폭증한 수치다. 더 이상 갑질의 횡포를 두고 볼 수 없는 국민들은 ‘대한항공’ 상호를 바꾸고, ‘태극기’ 문양도 삭제하라는 청원까지 올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갑질문화’가 민주사회로의 발전에도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봉건적 신분제 사회의 유습’이라고 지적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재벌 3세라도 철저하게 경영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지금처럼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형태로 경영권을 세습해서는 또 다른 갑질만 초래할 뿐이다. 돈과 권력을 내세운 세습적 갑질 문화는 청산해야 할 적폐이다.

 온 국민이 갑질 문화, 채용비리 등을 국민의 삶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불공적한 적폐로 인식하고 강도 높은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갑질’은 단순히 갑과 을의 관계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이미 옛말이 되었고, ‘금수저·흙수저 계급론’의 인식이 자리 잡아가는 지금, 우리사회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선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대한민국 사회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갑질 문화’를 근절하고, 신뢰와 공생, 동행(同行)의 자세로 새로운 사회문화를 만들어 가야할 때이다.

 김광수<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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