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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김정은, 통크게 한번 하시라
정동영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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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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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믿었던 사람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한반도 운명의 대전환이다. “신이 역사 속을 걸어갈 때 그 옷자락을 붙잡는 것이 정치가의 책무이다”고 한 비스마르크의 언급은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해 북이 핵을 포기하고 동굴에서 벗어나 햇볕이 내리쬐는 넓은 광장-국제사회로 나오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통 큰 접근이다.

 2005년 6.15에 내가 평양에 대통령 특사로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자리에 배석했던 서훈 실장(현 국정원장)은 방북 전 이렇게 조언했다. “북한 지도자는 사람들로부터 통이 큰 지도자라는 소리를 듣기를 좋아하니 대화 중에 적절하게 사용하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의 말대로 했다. 김 위원장이 2차 정상회담 개최문제나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참가문제를 망설일 때마다 나는 “위원장께서는 통이 큰 지도자이니 통 크게 결단을 합시다”고 설득했다. 실제 효과가 있었다. 2시간 반 단독회담과 2시간 반 점심회동 대화 결과를 통틀어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시간이 없으니 남북간에 통 크게 한번 합시다”였다.

 그날 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제2의 6.15 시대라 불릴 만큼 통 크게 전환했다. 개성공단을 위시한 경제협력과 사회 문화 인도적 교류가 전면 활성화되고 2005년 한해 북한을 방문한 남한 국민 숫자가 분단 이후 최초로 10만 명을 넘었다(금강산 관광객을 뺀 숫자다). 동시에 핵문제 해결을 위한 베이징 6자회담이 재개돼 마침내 2005년 9.19 공동성명이 합의 발표됐다.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과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국교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그때 9.19 합의가 실천됐더라면 핵문제 해결은 물론 한반도 냉전도 해체됐을 것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8년 봄 한반도는 마침내 운명의 대전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보다 통이 크다. 김정일의 꿈은 삼시세끼 먹는 것이었다. 김정은의 꿈은 그보다 훨씬 큰 ‘북한경제의 고도성장’을 꿈꾸고 있다. 그는 2012년 집권자로 등장하면서 “더이상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그는 핵무력 건설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국가목표로 내걸었다. 집권 후 핵실험 4차례, 탄도미사일 발사 60여차례를 감행하며 핵과 미사일로 질주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화성-15형의 발사성공과 함께 그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전략적 결단과 실천에 나섰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은 1차, 2차 남북정상회담 모두 남쪽의 제안과 설득에 대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임했다. 아들 김정은 위원장은 다르다. 올해 신년사와 평창올림픽 참가,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 등 모든 시간표가 그의 선제 능동적 제안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김정은의 큰 꿈이 무엇인지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후 집단농장의 토지를 쪼개 농민 5명씩의 단위로 나눠주고, 경작한 뒤 30%는 세금으로 내고 70%는 자가 소비토록 하는 포전제 개혁을 단행해 식량 생산을 크게 증가시켰다. 공장 기업소에 독립채산제와 차별임금제를 도입해 생활 소비재의 생산을 크게 늘렸다. 과거 80%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산 소비재가 80% 이상 북한 자국산으로 바뀌었다.

 지난 6년 동안 22군데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제개발구역을 지정했다. 서해안에 7군데, 압록강 두만강 지역에 7군데, 동해안에 7군데에 이어 지난 12월 하순 평양시 강남군에 강남 경제개발구역을 22번째로 지정 발표했다. 그의 꿈이 삼시세끼 먹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김정은이 공언한 큰 꿈-사회주의 부귀영화의 길은 베트남의 길을 말한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10년 전쟁을 끝내고, 20년이 경과한 1995년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룬뒤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1당독재를 유지하면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베트남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것이 김정은의 큰 꿈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김정은은 마침내 엊그제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해 그의 전략적 결단을 뒷받침했다.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경제건설 총력노선을 선포한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선제적 신뢰조치를 취했다. 노동당 회의에서 ICBM 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발표한 것이다.

 북한은 선대부터 미국에 대해 4가지 입장을 가져왔다. 1)미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뒤집어 진다. 2)미국은 두려운 존재다. 핵으로 위협한다. 3)생존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관심이 없다. 들은체 만체한다. 4)미국의 위협에 맞서 핵무력을 건설해야 한다. 언젠가는 협상할 때가 올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마침내 네번째 단계가 도래한 것이다.

 김정은의 언급중에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한반도는 과거 지정학적 피해자로부터 앞으로 지정학적 수혜자로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의식과 미래 꿈이 담겨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짝을 이룰 수 있는 표현이다. 통 크게 한번 이루었으면 좋겠다.

 정동영<국회의원> 

 약력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국민의당 국가대개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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