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를 한마디로 말하지 말라”
“전주를 한마디로 말하지 말라”
  • 윤석
  • 승인 2018.04.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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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이후, 전주시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분들께 퀴즈하나. “전주는 00이다.” 쉬운 듯, 어려운 문제다. 그들의 방대한 도시관을 한 문장에 녹여내야 한다. 전북도민일보 독자 분들도 답을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떠올랐는가? 그럼, 지금부터 그 답을 마음에 품고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며칠 전, 자회사가 시공 중인 현장으로 시찰을 나갔다. 서학동 예술인마을 앞 인도를 정비하는 공사다. 낡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물이 빠지는 새 블록으로 교체하는 중이었다. 가로수를 정비하고 길 중간중간 기발한 모양의 벤치도 놓을 예정이다.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의 공사다. 현장을 지켜보다가, 문득 예술인 마을로 들어가 봤다. 아기자기한 공방, 세탁소 같은 점포의 빛바랜 간판,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페들이 골목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햇살 좋은 날, 조용하니 걷기 좋은 동네다. 요새 인기 있는 서울의 ‘서촌’ 못지않았다. 사실 전주는 예전부터 이랬다. 옛것, 고즈넉함, 아름다운 문화 공간, 축제 같은 것들이 펼쳐진 여백과 힐링의 도시. “그래, 이게 바로 전주지!”

 #몇 주 전, 본사가 시공을 끝낸 상가건물을 살피러 효자동 신시가지에 갔다. 상가와 오피스 빌딩이 빼곡했다. 잿빛 도시를 황혼이 채우는 중이었고, 퇴근하는 넥타이, 원피스 부대가 거리를 메웠다. 어두워지자 술집, 밥집, 카페, 클럽과 좁은 길거리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크게 떠들었고, 힘차게 몸짓했다.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시끌벅적한 시가지의 허공에 파랗고 노란 불빛이 번졌다. 서울의 강남, 이태원 부럽지 않았다. 사실 전주는 예전부터 이랬다. 중앙동, 고사동, 전북대학교 앞, 신시가지까지. 시민들은 ‘시내’에 한데 모여 일하고, 돈을 벌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싸우고, 사랑 하며, 돈을 썼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와, 그 행위가 만들어 내는 소비가 돌고 돌아 지역경제를 창출했고,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래, 이게 바로 전주지!”

 #이쯤에서 다시 질문. 그러니까 전주는 한 마디로 어떤 곳인가. 사물이나 현상을 한 마디로 규정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단순화, 일반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장상사를 엄격한 인간이라고 단정 지었는데, 어린 딸 앞에서 바보 짓 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단정은 틀린 게 된다. 인간은 ‘다원적’ 존재다. 65만명의 다원적 존재가 모여 사는 도시를 단일개념으로 추상화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지난 십수년간 전주는 ‘전통과 문화의 도시’를 강도 높게 표방해왔다. 성공했다. 타지인은 ‘전주’를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말한다. 한 해 1,000만명이 찾아온다. 기분 좋다. 관광수익 같은 실리도 있다. 하지만, 24시간 전주에 머무는 시민의 실제적 삶에, ‘무슨 무슨 도시’라는 상징성이 큰 의미를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매일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일을 안할 때는 트렌드에 맞는 여가와 유흥을 즐기고 싶다. 새 건물과 높은 빌딩, 연봉 높은 직장이 있는 도시에서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싶다. 주말에는 유행하는 음식을 먹고 마시고 싶다. 그러다 문득, 현재의 한국에서 괜찮은 수준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 우리도시가 그런 공간이 되기를 시민은 언제나 원했다. ‘전통문화도시’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전주가, ‘비전 있는 신도시’로서의 몸 근육을 키우는 걸 게을리하면 안 되는 이유다.

 #선거철이다. ‘구도심은 구도심답게, 신도시는 신도시답게!’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띈다. 전통, 문화 도시추구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원적 시민의 욕구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느껴져 반갑다. 처음에 낸 퀴즈를 후보자들이 아직 풀지 못했다면, 그냥 그만두길 바란다. 앞으로는 전주를 단순화하지 말아 달라. 미래 전주는 과거와 미래, 멋스러움과 실리, 구도심과 신도시가 공존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치적 각성이 선거 구호를 통해 작지만, 처음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6월 이후 전주가 기대되는 이유다.

 윤석<삼부종합건설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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