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變)해야 오래 산다
변(變)해야 오래 산다
  • 김동수
  • 승인 2018.04.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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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나이가 들어 좋아한 책이 <주역(周易)>이었다고 한다. 집에 있을 땐 책상 위에 놓고 보았고, 밖에 나갈 땐 배낭 속에 넣고 다니며 읽을 정도로 이 책을 좋아하여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고 한다. 공자가 이처럼 좋아한 <주역>의 요점은 ‘세상의 모든 것은 두루 바뀐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천지자연의 이치를 잘 깨달아 처신해야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열반경>에 나온 ‘제행무상(諸行無常)’도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만고의 진리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누누이 강조하였다고 한다. ‘군자의 학문은 반드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君子之學 必日新)’ ‘날마다 새로워지지 아니하는 사람은 반드시 퇴보(退步)하게 될지니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동양의 고전 <대학>에서도 변화가 군자의 필수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다.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는 종(種)들은 도태되고 변화를 받아들인 종(種)들은 살아남게 되었다. 육지에서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멸종하고만 공룡과, 새로운 먹이를 찾아 바다로 들어가 진화한 고래의 경우도 그것이다. 도태냐 진화냐 이 갈림길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 변화가 곧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원액(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섞어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스팀 밀크를 넣어 카페라테를 만들고, 우유 거품을 넣어 카푸치노를 만들어 가는 커피의 변신도 생존의 한 방식이다. 변화가 곧 지속이다(The only constant is change). 그러고 보면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과 도약의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기본 철학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변화 속에서도 항상 지켜가야 할 ‘불변의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변화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에 그냥 무턱대고 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모습은 변해도 근본, 곧 본질마저 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찍이 CNN 창업자 섬너 레드스톤 회장이 강조한 ‘변화 속의 지속성’과도 같은 맥락이다.

 줏대 없는 변신과 변심에는 생명이 없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신념과 철학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의 정체성(identity)이요, 변화를 생명의 창조 과정으로 보면서도, 변화 속의 질서로서, 천지자연을 지탱케 하는 우주의 질서요 도(道)인 셈이다.

 난초는 부드러우면서도 매서웁고, 대나무는 흔들리면서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 난초와 대나무의 생명은, 모나지 않고 부드러워 온전하게 자기를 지켜가는 곡즉전(曲卽全)의 철학에 있다. 곧 우유부단(優柔不斷)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자성어가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부드러워야 끊어지지 않고 오래 간다’고 여겨 즐겨 인용한다고 한다.

 10여 년 전인가? 태풍과 지진이 잦은 일본에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新) 건축법이 소개되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소위 ‘이동 하중법’이라는 건축 기법이었다. 외부의 충격을 스스로 흡수하여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건축물을 견디게 하는 건축법이었다. 이것이 나긋나긋하면서도 쉽사리 동(動)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철학이요, ‘동중정(動中靜)’의 삶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

 궁하면 통하고(窮則通) 통하면 변하고(通則變) 변하면 오래 간다(變則久)고 <도덕경>은 말한다. 난초 잎이 흔들리고 대나무가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흔들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뿌리가 그 아래 굳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변하면서도 변치 않은 ‘변화 속의 지속성’으로 문 자기의 생을 굳건하게 지켜가는 자기 주도적 삶이 아닌가 한다.

 김동수<시인/미당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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