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 안전을 부른다
불편함이 안전을 부른다
  • 이선재
  • 승인 2018.04.1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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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건축물의 고층화, 대형화, 복잡화 및 실내 장식물의 고급화 추세는 화재 위험성 증가 및 소화활동의 어려움을 확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화재를 조기에 발견하여 화재 확대를 최소한으로 저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 최근 5년간 화재발생현황을 살펴보면 5년 평균 화재발생은 4만3천여 건이며, 이로 인한 사상자 평균은 3백여 명, 재산피해 평균도 약 4천400억 원에 이른다. 이처럼 화재 발생 시 인명 및 재산피해가 극대화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신속한 대처와 예방을 위한 소방시설의 중요성도 더불어 증가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최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안전 제반 시설도 많이 늘어났지만 크고 작은 재난과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강구하고 노력하지만, 도민이 피부로 느끼는 안전 현주소는 제자리걸음이다. 대형재난이 발생하고 난 후에서야 시급히 대책을 내놓기 바빴으며 나아가 땜질처방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다. 대형화재를 겪을 때마다 온 국민이 안전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무엇이든 할 것처럼 안전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그 시기가 지나면 화재에 대한 경각심도, 안전을 위한 노력도 옅어져 왔다.

 안전을 위한 비용부담을 과도한 규제라고 판단하기도 하며 불편한 겉치레라 생각하고 안전조치를 성가신 숙제처럼 바라보는 인식도 여전하다. 관계인 및 소방안전관리자는 평상시 경보설비의 비화재보나 장난에 의한 발신기 작동 등 기기의 이상여부를 항상 확인, 점검하여야 하나 건물에 설치되는 소방시설을 법 규제에 의해 마지못해 설치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방시설의 유지관리에 대한 의지가 적은 탓이다.

 지난해 6월 런던에서 발생한 고층 아파트 화재에서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 국내에서도 소방시설에 대한 불신과 고층건물 안전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우려가 있었다. 이후 많은 사상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밀양 세종병원 참사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넘어 화재에 대한 공포심이 일기도 했으며 소방시설에 대한 효용성마저 의구심을 품게 했다. 그러나 지난 2월 발생한 세브란스병원 화재는 평소 화재에 대비한 방재시설 작동과 현실성 있는 재난 대응 매뉴얼 준비가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었다.

 최근 전주의 한 대형 사우나 건물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는데 신속한 신고와 현장 대응으로 다행히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유사한 시설물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제천 화재참사를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에 더욱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화재는 심야 시간대 발생했으며 자칫 많은 인명 피해로 연결될 수 있었다. 지하 1층 보일러실에서 용접 작업 중 튄 불꽃이 삽시간에 찜질방과 헬스클럽 등 건물 전체로 연기가 번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재 발생 초기 지하에 있던 간이스프링클러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온전한 피난 대피시설들이 인명 대피를 쉽게 했다. 화재 초기 직원들의 안내로 손님들이 긴급히 옥상과 창문 등으로 대피할 수 있었고, 제천 참사 이후 미진했던 소방시설들을 정상상태로 점검한 이후이기도 했다. 이처럼 소방시설은 만일 화재 확산으로 인한 피해의 최소화에 주안점을 두고 설치되는 가장 중요한 설비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화재 역시 근본적인 원인은 안전의식 결여에서 비롯됐다. 용접 작업 시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았고, 화재는 작은 방심에서부터 시작됐다.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자칫 큰 화를 불러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화재는 현시대에만 일어나진 않았다. 세종 9년 서울에서 발생한 화재는 2,000채 이상의 집이 불탔고, 확인된 사망자만 30여명 이었다. 소방시설이 미비했던 옛날에는 작은 불이 큰 재앙으로 이어지기 쉬웠기에 화재 예방을 위한 제도 마련에도 힘을 쓴 흔적이 있다. 불기운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창고의 간격을 일정 정도 거리를 둬 짓게 했으며 처마 밑까지 담장을 쌓도록 하기도 했다. 큰 화재 이후에는 임금은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음악을 중지하게 하는 등 깊은 반성과 경계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대비를 해도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당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종 8년에 경복궁에 큰불이 난 적이 있는데, 궁궐을 수리하며 온돌을 만들면서 과도하게 불을 땐 것이 화재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최고의 시설을 갖춘 궁궐이었겠지만 화마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안전한 전라북도, 안전이 보장되는 삶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준 가슴 아픈 교훈처럼, 지난 대형 참사들도 깊이 되새기며 항상 안전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 어떠한 불편함도 감수하지 않은 채 안전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이선재<전북도 소방본부장> 

 약력 ▲중앙소방학교 행정지원과장 ▲소방방재청 방호조사과 방호팀장 ▲부산 소방안전본부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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