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시신 기증자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
사후 시신 기증자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
  • 이소애
  • 승인 2018.04.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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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자와 죽은 자와의 이별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어렸을 적 사람이 죽으면 별나라로 가는 줄 알았다. 화려한 꽃상여를 타고 꽃비단 만장이 펄럭이는 뒤를 따라가면 상여꾼 요령잡이 선소리꾼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노제를 지내는 떡과 과일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다. 새끼줄 틈새를 비집고 끼워 넣은 돈이 행여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저승길은 두려운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꽃상여가 동네를 지나갈 때에는 사립문을 박차고 나가 상여행렬 맨 뒤꽁무니에 따라갔었다. 시끌벅적 사람들 목소리가 섞일 때에는 아름다운 꽃가마를 타고 가는 망자가 부럽기도 했었다.

 “불쌍하고 가련허다” “어어하 어어하 어허 어어하” 꽃상여를 멘 상여꾼들의 듬직한 팔뚝을 보면 악귀들도 무서워서 접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요령잡이의 구슬픈 목소리가 산이, 바람이, 가로수, 전봇대가 모두 고개 숙여 떠나보내는 길은 슬프다 못해 흥이 겨워보였다.

 “내가 간다고 서러워마라” 오름길의 술상에서 혼을 불러일으키는 소리가 산바람에 휘돌고 있었다. 계집애는 상여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고 어머니가 혼쭐을 낼 때까지 따라다녔다.

 요즈음은 꽃상여 대신 고인전용 특급 장의리무진을 타고 떠난다. 번쩍번쩍 거리는 최고급 차에 망자를 떠나보내면서 마음에 위로를 갖는다. 유족들은 최선을 다해서 국화꽃길을 놓으면서 떠나보낸다. 바로 불가마 속으로 태워질 주검일지라도 성의를 다해 수의를 입히고 정성껏 기도를 한다.

 내가 잘 아는 그녀는 참 착한 여자였다. 육이 오 전쟁이 터지는 날이 생일이어서 전쟁 통에 어머니의 마른 젖을 빨고 성장했다. 피난 다니느라고 갓난아이 때부터 몸뻬를 입혔다. 폭격 소리를 어머니 품속에서 듣고 자랐다. 어머니 입으로 으깬 밥을 먹고 자랐다. 철이 들면서 총깎지를 끼운 몽당연필로 일찌감치 한글을 깨우친 참 똑똑한 아이였다.

 남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그녀는 간호사가 되었고 시신을 J대학병원에 흔쾌히 기증하겠노라고 자랑하더니 망자가 되었다.

 그러나 시신을 기증한 그녀의 주검은 하늘나라의 화려한 자리에 있을 거라는 위안이 들기도 했다. 천사들이 큰 상을 줄 거라고 위로를 했다.

 그런 후, 나는 바람만 세게 불어도 바람 끝에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떠나보내는 사람의 가슴에는 아직 망자가 병원 어두운 모퉁이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괴롭힘을 당한다. 참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녀의 주검은 봉고차에 환자복을 입은 채로 들것에 실려 짐짝 밀어 넣듯 좁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네모난 공간에서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쾅’ 소리를 내며 뒷문을 닫더니 자동차 바퀴소리가 굉음을 냈다. 마치 짐짝을 싣고 가는 듯했다. 봉고차에는 J병원 소속이라는 글씨가 없었다. 그녀를 싣고 장례식장을 떠나 험난한 길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국화꽃으로 장식한 리무진을 타고 저세상으로 갈 거라는 생각은 망상이었다. 아니, 병원 관계자들이 와서 정중하고 친절하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줄 알았다. 사무적인 절차를 마치고 가버리는 차창에는 여름 장맛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장례식장에서 병원으로 주검을 모실 때까지의 절차를 다시 재고해 주기를 바란다. 꽃상여를 보낼 때처럼 아름다운 이별을 유족에게 남기고 떠나는 그런 배려가 필요하다. 나도 시신을 기증해야겠다는 각오를 하도록 사무적이 아닌 따뜻한 관심이 있기를 바란다.

 이소애<시인/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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