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영웅들 여기가 보금자리 ‘장수삼절(長水三節)’
서민 영웅들 여기가 보금자리 ‘장수삼절(長水三節)’
  • 고강영
  • 승인 2018.04.1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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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향 장수(長水)는 물이 길고 많은 고장이라 하여 장수다. 물이 많다는 것은 바로 산이 많고 산이 험하다는 말도 되리라. 우리 고장에 대표적인 마을로 수분리(水分里)라는 마을이 있다.

 글자 그대로 물이 갈라지는 동네다. 바로 그 마을의 한 귀퉁이에서 한반도의 서남부를 굽이쳐 흐르는 금강(錦江)과 섬진강으로 갈라지는 분수령을 이룬다. 그 만큼 장수는 깊은 두메산골로 형성 되었다.

 워낙 인적이 드물고 각박한 고장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산맥이 기의 흐름을 차단해서 그럴까. 그 흔한 정승, 판서 한 사람 배출하지 못한 고장이 장수 땅이다. 그 대신 많은 서민영웅을 배출했으니 얼마나 기개 높은 땅인가.

 장수의 향교(鄕校) 입구에 비각 하나가 서 있다. 충복(忠僕) 정경손(丁敬孫)을 기리는 비각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고을마다 왜군이 휘젓고 다니면서 향교를 불태웠다. 이 때 전국의 향교 대부분이 소실되었는데 장수만 화를 면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순전히 정경손 때문이었다..

  전란에 모두 집을 비우고 도망치고 없는데 당시 향교지킴이었던 정경손은 불태우려 온 왜적에게 대항하였다. 그는 전복(典服)을 단정히 입고 오성위패(五聖位牌) 앞에서 경서를 읽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왜적이 향교로 진입하려 하자, 큰 소리로 호령하였다.

 “내 목부터 먼저 베고 향교로 들어가라.”

 정경손의 당당함과 그 충정에 감복된 왜병들은 횃불을 냇물에 던져 버리고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이란 방을 붙이고 물러갔다. 자랑스러운 그 서민영웅이 바로 내 고향 장수사람이다.

  그러나 어찌 그 한 사람 뿐이랴. 또 있다. 장수에서 감영(監營)이 있는 전주로 가는 옛 길목에는 깊은 소(沼)가 있고 그 둔덕에 타루비(墮淚碑)라는 비각이 있다. 이 타루비는 현감을 배행하던 아전이 순절한 뜻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어릴 적에 우리 꼬맹이들은 비각 옆의 암벽에서 자주 놀곤 하였다. 그런데 그 암벽에 물을 끼얹으면 바위에 그려진 검붉은 빛의 어른어른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위쪽이 꿩 그림이고 아래쪽이 말 그림이라 구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곤 하였다. 분명히 누군가가 그곳에 그림을 그린 게 틀림없었지만 우리들은 알 길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문을 보고 배리에 살았던 성이 백씨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1678년(숙종 4년) 3월 22일 당시 장수현감 조종면이 전주(全州) 감영(監營)에 가려고 말을 타고 장척마을 앞 바위 비탈을 지나는데 길가 숲 속에서 졸던 꿩이 말발굽 소리에 놀라 푸드득 날아가자, 이에 말이 놀라 한쪽 말발굽이 절벽 아래 소(沼)에 빠졌다.

  급류에 휩쓸린 현감이 목숨을 잃게 되자 주인을 잃은 아전 백씨는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꿩과 말을 그린 뒤 타루라는 두 글자를 바위에 새겨놓고 자기도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 충절의 서민 역시 내 고향 장수사람이다.

  서민 영웅은 또 있다. 지금은 남산 사당에 모셔진 의암(義岩) 주논개(朱論介)의 충절비(忠節碑)가 바로 그것이다. 임진왜란 전에 불우하고 가난했던 논개는 당시 장수 현감이던 최경회(崔慶會)의 부인 밑에서 일을 거들며 살았다. 부인이 죽자 최경회의 재취가 되었는데 남편이 진주(晋州)병사로 전근하게 되어 따라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회는 진주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게 되었고, 논개는 원수를 갚으려고 기생으로 등록하여 왜군의 장수를 살해할 궁리를 했다. 논개는 승리에 도취한 왜군의 승전잔치에 기생으로 초대되어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하여 살신애국 하였으니 이보다 의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들이 장수삼절(長水三節)로 추앙을 받고 있다. 겉으로는 도학을 찾고 있지만, 속내는 백성들을 수탈한 그 많은 명문거족들에 비해 얼마나 순후하고 의로운 사람들인가.  

 나는 이런 서민 영웅들을 배출한 내 고향을 사랑한다. 그런 충절의 고장 장수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성장했으며, 이곳에서 뿌리를 박고 있으니 이 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영원한 장수사람이다.

고강영<장수군사회보장협의체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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