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문화 왜곡 재연에 누가 우는가? <2>’
‘조선왕조문화 왜곡 재연에 누가 우는가? <2>’
  • 최정철
  • 승인 2018.04.16 16: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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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서와 사약의 참관 하에 약시함이 교환되고 있는 모습

 지난주에 이어 조선왕조문화 재연 오류에 대한 글을 이어가보겠다.

 다음은 창작 사례들이다.

 첫째, 조선의 궁중 수라는 숙수(熟手)라고 불린 전문직 사내들이 요리했다. 수라 때 상궁들은 숙수들이 만든 수라를 왕에게 가져다 바치는 것과 왕이 수저를 들기 전 음식에 문제가 없는지(독이 없는지) 시식하는 역할만 수행했고. 그런데 어느 날 대장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수라는 상궁이 만드는 것으로 전세계를 향해 대못 박고 말았다. 약방 기생 장금이가 병든 왕에게 의학적 관점으로 음식을 가려 제안한 것을 두고 드라마 작가와 연출자 두 사람이 너무도 심하게 왜곡시킨 것이다. 창작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거늘 이들의 행각은 거의 천인공노 수준이라 할 만하다.

 둘째, 덕수궁에서 행해지고 있는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을 보자. 1995년 가을 서울시에서는 영국 버킹엄궁 위병교대의식과 같은 관광 상품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조선왕조 문화를 소재로 하는 궁궐 호위군 교대의식 제작을 추진했다. 문제는 고증 자료에 종4품 수문장의 존재는 확인되었지만 교대의식 자체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 다는 것. 결국 창의적(?)으로 만들어진 초기 구성안의 소요시간은 대략 5분 안쪽. 그러나 당시 서울시 담당 계장의 불화 같은 요구에 10분이 넘는 교대의식이 되었으니 별 것이 다 들어가야 했다. 수문장끼리 부신(符信, 나무로 만든 증표)만 맞춰보고 교대하면 될 것을, 비밀스러운 암구호를 대한문 밖에서 낭랑하게 복창하고,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 정7품, 기록 담당)와 액정서사약(掖庭署司?, 정6품, 궁궐 내 각 문의 자물쇠와 열쇠 관리) 두 관원이 뜬금없이 등장하고, 내밀히 보관해야 할 약시함(궁문 열쇠 보관함)을 정문 앞에 보란 듯이 전시해 두었다가 두 참하(參下, 7품 이하 급, 수문장의 부관)끼리 주고받게 하고... 그로써 교대의식은 완벽한 ‘쇼’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창작 장면들이 추가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5년과 1996년의 궁중문화 재연 사업 초기 시점에 공무원 몇 사람의 고집으로 본질이 그토록 어지러워진 것.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 토할 일이다. 덕수궁 수문장교대의식의 뒤를 이어 등장한 경복궁 수문장교대의식은 그나마 의식다운 형태를 갖추었다 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그 또한 창작일 뿐이다. 

 셋째, 왕 즉위식이다. 대한제국 이전 조선왕조 기간 동안에는 제대로 된 왕 즉위식은 없었다. 다만 태종의 세자 도(?)가 부왕으로부터 선위(禪位, 부왕 생전에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줌)를 받았을 때 면복과 면류관 대신 강사포와 원유관 차림으로 간략하게 치른 것이 그나마 외양을 갖춘 것이라 할 만하고 그 외에는 모두 사위(嗣位, 부왕의 상중에 왕위를 승계함)였기에 화려한 왕 즉위식은 일체 하지 않았다. 조선왕조 왕 즉위식의 실체는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병상에 누운 부왕이 국새가 담긴 보(寶)를 세자에게 건네주는 것, 도승지가 정전 정문 밖에 허위(虛位)를 차려놓고 종친 문무백관을 도열시킨 채 신왕 이름으로 작성된 즉위 교서를 낭독하는 것, 정전에 든 신왕이 애도 속 신하들로부터 천세천세천천세(千歲千歲千千歲) 하례 받으며 슬피 우는 것 등이다. 그럼에도 정전 뜰에 종친 문무백관 가득 세워놓고 풍악 거창하게 울리는 중에 신왕이 길고 긴 어도를 밟고 정전에 오르는 왕 즉위식이 오늘날 기회만 되었다 싶으면 TV 화면과 스크린에 들락날락하고 있다.

 필자는 행사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선왕조문화를 왜곡하여 재연하는 것을 오래 전부터 지적하고 개정하기를 바랐으나 아직도 소귀에 경 읽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선왕조문화 왜곡 재연에 과연 누가 우는가?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 황실문화재단 등 왕실 후손 단체들이 울고 있는가? 그들은 조선왕조가 일으켜 세웠던 민족정신과 철학, 지혜를 계승하고 확산시키는 매개체 역할은 뒷전으로 한 채 그저 허망한 향수에 빠져 옛 왕들의 형상만 좇고 있을 뿐이다. 조선왕조문화가 그토록 왜곡 변질되고 있는데도 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조선왕조 풍패지향이요 탯줄인 전주시가 울어야 한다. 하루빨리 팔 걷어 부치고 나서서 고증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조선왕조문화 재연 오류들을 시급히 교정하고, 나아가 전주시가 조선왕조문화에의 주도권을 더욱 강화하기를 바란다. 울지 않으면 떡이 가지 않는다.

 /글 = 최정철 서울한양도성문화제 총감독(『성공을 Design하는 축제실전전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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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원 2018-09-30 04:56:51
맞습니다. 좋은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