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멸균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멸균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
  • 장상록
  • 승인 2018.04.1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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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대학 지도교수께서 들려주신 얘기다. 해외에서 만난 북한 학자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남조선이 우리 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잘 산다는 것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적으로 남조선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 그는 자신의 논거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우리는 공중변소에 낙서하나 없다.” 그렇다. 북한에서 보면 남조선은 성적으로 타락하고 혼혈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 민족적 정체성마저 의심받게 하는 한심한 족속이다. 그뿐인가. 대외적으로 종속적이며 국가원수와 공권력을 조롱하는 것이 동내 강아지 보다 못한 한심한 체제다. 간과하기 쉽지만 북한 공권력이 일반 북한 공민에 대해 비이성적이지 않다는 많은 증언이 있다. 정치범 수용소가 북한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화장실에 낙서가 있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며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 거기엔 나와 의견이 다르며 때로는 위험한 생각에 대한 관용은 물론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은 많은 행태까지도 포함된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극우에서 극좌까지 존재할 수 있는 사회는 때로 혐오감을 안긴다. 그것은 술 취해 비틀거리는 군상들의 모습 속에도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두 제거한 멸균사회를 원하는가.

 불편하다. 보다 적확하게 말해서 불안하다. 많은 흠과 실수를 안고 사는 내게 언제 어떤 주홍글씨가 새겨질지.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수 있다. 페이스북에 남긴 글 한 조각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정의라 생각하는 것에 작은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서, 아니 보다 치명적인 것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추궁을 통해서일 수도 있다. 사회에 정의가 넘쳐난다.

  죽음 앞에서 ‘자살할 자격도 없다.’고 단언하는 사회에는 정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까.

  송갑조는 아들 송시열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자는 훗날의 공자다. 율곡은 훗날의 주자다. 공자를 배우려면 마땅히 율곡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침내 송시열은 조선의 주자, 송자가 된다.

  [주자대전]과 [송자대전], [금]과 [청], [정강의 변]과 [병자호란], 남송의 효종과 조선의 효종, [임오봉사]와 [기축봉사] 그리고 북벌론 까지. 송시열은 [기축봉사]에서 주자의 [임오봉사]를 인용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상에 흔치 않은 큰 공은 세우기 쉬우나 지극히 은미한 본심은 보존하기 어렵고, 중원의 오랑캐는 쫓아내기 쉬우나 한 몸의 사의는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때문에 감히 구차하게 대단한 말을 하여 폐하를 속일 수 없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욕을 극복하여 정사를 수행하시면, 진실한 공효를 점차로 이룰 수 있습니다. 대개 이른바, 진짜 [역경(易經)]에 정통한 자는 [역경]을 말하지 않고, 참으로 회복에 뜻을 둔 자는 칼을 어루만지고 손바닥을 치는 그러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남송과 조선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이념적 기반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은 조선과 어떻게 다른가.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그가 바라본 한국사회는 모든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이(理) 함유량, 곧 ‘도덕 함유량’에 따라 평가된다.

  조선엔 극소수의 왕족과 소수의 양반이 있었다. 일반 백성은 차치하고 백정을 비롯한 천민은 다 어디로 갔을까.역설적이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백정’은 구성원 모두를 왕족이나 양반의 후손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이 아직도 성리학의 이(理)가 지배하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래서인지 모른다.

 때로 세상은 정의의 궁핍이 아닌 과잉에 의해 파괴된다. 나는 멸균사회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늘 이 땅에 넘쳐나는 정의는 그것을 얘기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다른 모습에 대한 혐오는 이미 차고 넘친다. 화장실에 낙서하나 없는 사회는 멸균사회일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건강할 수는 없다. 화이론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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